NYT(영>한) 2012. 9. 12. 02:33

뉴욕타임즈

사설

2012. 5. 6.

실행자와 이론가

제이슨 스탠리


스톤은 동시대 철학자들이 시사적인 주제나 불변하는 주제, 모두에 대해 논하기 위한 공간이다.

태그: 지식, 철학


120614이론과실행-NYT.docx


우리 사회는 이론 지식과 실행 능력 사이에 놓인 가상의 분리 선에 기반한 계층으로 나뉜다. 대학 교수는 텔레비전에서 지루하게 떠들고, 배관 기술자는 뜬구름 잡는 상아탑 지식인들에 대해 화를 낸다. 대학 교수와 배관 기술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우리들 각자의 지성에 대한 사고 방식으로 반영된다. 인간은 이론가이자 실행자이다. 이런 활동들이 개별적인 능력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은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생각할 때는 세상의 진실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행동할 때는 다양한 행동 방식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들이 분리된 인식 능력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은 다르다. 대학 교수의 세계는 아마 배관 기술자의 세계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정신 능력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는 지식이 순수하게 이론적인, 진실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체득하지못한다. 배관 기술자는 정치 체계와 경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 복잡한 행동 능력은 그런 지식에 대한 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일을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친숙하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자동차 수리, 자전거 타기, 점프 슛 하기, 아기 돌보기, 리조또 요리 같은 활동을 실행 지식을 이행하는 것으로 즉각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수학 명제 증명, 물리학 가설 검증, 철학 논거 정립하기를 진리에 대한 지식 운용 능력을 이행하는 것으로 구분 지으려 한다. 이론적 사고에 능한 만큼 실용적인 일은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많이 쓰이는 대중문화 소재이다. 실행 기술은 지적 지식의 양상이 아니라는 일반적 생각은 현대 철학에서도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전례를 찾자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분법이 제시하는 모형에 따르면, 이론 지식의 이행은 연이은 지식의 행동으로 이끄는 해당 이론 가설이나 규칙과 관련된 능동적인 사고를 수반한다. 체스 선수가 체스의 첫 수()에 대해 배운 지시사항에 따르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조적으로 실행 지식은 심사숙고 없이 자동적으로 이행된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는 공을 받아 치기 전에, 지침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는 공을 받아 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자동적으로 실행한다. 또한 이론 지식의 이행이 가설이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행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침과 관련 있다는 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 이론 지식을 이행하는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지침서를 갖고 있다. 반대로 테니스 기술을 구성하는 일부 요령은 어떤 지침서로도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응과 관련 있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가 잘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지침서를 따르는 일과 무관해 보이는 행동인 새로운 서브에 대해 경기를 조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활동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는 적성이 진리에 대한 지식 습득에 대한 적성과 다르다는 생각은 타인과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 아이가 신체 활동에 재능을 보이면서 수학에 대한 흥미가 초반에 부족하다면, 아이가 실용적 활동에는 적성이 있으나 지적 추구에는 적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행자들과 이론가들 사이에 있음직한 구분 선을 일단 그으려고 하기 시작하면 틈이 나타난다. 운동 기술을 익히는 사람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그러나 과학 가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도 학습의 일례이다. (모두는 아니라도) 세계의 많은 언어에서 같은 동사가 이론 지식뿐 아니라 실행 지식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영어로 “know”는 불어로 “savoir”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지식에 대한 어떠한 실행에 대해 생각해보더라도, 실용적이든 이론적이든 간에 솔직히 말해서 실행 능력과 지적 능력을 둘 다 사용해야 하는 특성을 갖는 듯 보인다. 수학자의 명제에 대한 증명은 이론 지식의 실행에 대한 이상적인 예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능숙하게 계산하기 위한 수학자의 훈련은 테니스 선수의 훈련처럼 수학자가 수학적 현실을 탐험할 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하는 데 능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이행하는 일에는 능동적 사고도 필요 없다. 필자는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킨다는 지식을 일말의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이행한다. 다른 면을 보면, 단순히 실행 지식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예가 명백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습득된다. 사람들은 요리책의 조리법을 읽으면서 리조또 요리법을 배울 수 있고 종종 그렇게 하니 말이다.

아마 실행 지식을 이론 지식과 구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는 말로 그 지식을 표현할 수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배울 때는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을 알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표현하지는 못할 수 있다. 반면 워싱턴이 미국 수도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를 구분한다고 해서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 사이에 어떤 임의적 구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필자는 암호가 415XH라는 점을 알아도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 있다. 단지 번호판이 주어질 때 번호 키를 누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 지식은 그러니까 필자의 손가락에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하는 점이 이론 지식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실행 방법을 알고 있는 누구든지 그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기를 웃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결국 이게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를 웃기는 동안에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른 곳에서는 더 길게) 실행 지식과 진리에 대한 지식 사이에서 임의적인 구분을 무턱대고 지으려 한다면 실패한다는 점을 논했다. 배관 기술자나 전기 기사의 활동은 과학자나 역사가의 최신 기사들과 같은 종류의 지능에 대한 표현이다. 즉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 역학에는 능숙한 반면 철학에는 무능할 수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이론 물리학에 능하지만 철학에 무능한 사람도 있다는 점 또한 맞다. 능숙하고 능숙하지 않은 것 사이 구분은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과 관련이 없다. 학생 대출을 합리적으로 받아내기만 위해서라면 우리는 또한 많고도 아마 더 복잡한 사실을 익혀야 하는 전문적인 직업과 더 쉽게 잘할 수 있는 직업 간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병렬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연장선 상에 있는 구별이다.  

우리 사회에는 실용적인 일과 이론적 사고 사이에 잘못된 이분법으로 세워진 장애물들이 있다. 누군가 자동차 수리에 대한 재능을 일찍 개발한다면 자신이 문학비평이나 명제 입증에는 소질이 없을 거라고 잘못 가정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로부터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문학비평이나 수학에 대해 잠재적으로 중요한 공로자를 빼앗는 셈이다. 사회의 보상 체계 또한 이론적 성격이라고 판단되는 것에 따르는 희생과 비용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앞선 상황을 가정 한다. 가상의 구분은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기능한다. 자동차 수리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을 평가할 만한 적절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토론으로부터 이질감을 느껴서 자신의 소외감이 선전 요원들의 분노에 찬 수사법으로 반영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실행자와 이론가 사이 구분은 사회를 여러 갈래로 고착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 구분은 소외시키고 분열시킨다. 그러면 그것이 단지 소설이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제이슨 스탠리는 루트거 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 권의 저서, “지식과 실행 이익”, “상황 언어”, “요령의 저자이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글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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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영>한) 2012. 9. 12. 02:31

Opinionator

MAY 6, 2012, 5:00 PM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By JASON STANLEY

The Stone is a forum for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issues both timely and timeless.

Tags: knowledgePhilosophy


120614ThePracticalNTheoretical-NYT.docx

Our society is divided into castes based upon a supposed division between theoretical knowledge and practical skill. The college professor holds forth on television, as the plumber fumes about detached ivory tower intellectuals. The felt distinction between the college professor and the plumber is reflected in how we think about our own minds. Humans are thinkers, and humans are doers. There is a natural temptation to view these activities as requiring distinct capacities. When we reflect, we are guided by our knowledge of truths about the world. By contrast, when we act, we are guided by our knowledge of how to perform various actions. If these are distinct cognitive capacities, then knowing how to do something is not knowledge of a fact — that is, there is a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knowledge. The world of the college professor is supposedly so different than the world of the plumber because they are viewed as employing fundamentally different mental capacities in their daily lives. The college professor doesn’t “get it,” because her knowledge is purely theoretical, knowledge of truths. The plumber isn’t qualified to reason about a political system or the economy because skill in complex action is not an exercise of such knowledge.

The cliché of the learned professor inept in practical tasks is just as familiar as that of the dumb jock.

Most of us are inclined immediately to classify activities like repairing a car, riding a bicycle, hitting a jump shot, taking care of a baby or cooking a risotto as exercises of practical knowledge. And we are inclined to classify proving a theorem in algebra, testing a hypothesis in physics and constructing an argument in philosophy as exercises of the capacity to operate with knowledge of truths. The cliché of the learned professor, as inept in practical tasks as he is skilled in theoretical reasoning, is just as much a leitmotif of popular culture as that of the dumb jock. The folk idea that skill at action is not a manifestation of intellectual knowledge is also entrenched in contemporary philosophy, though it has antecedents dating back to the ancients.

According to the model suggested by this supposed dichotomy, exercises of theoretical knowledge involve active reflection, engagement with the propositions or rules of the theory in question that guides the subsequent exercise of the knowledge. Think of the chess player following an instruction she has learned for an opening move in chess. In contrast, practical knowledge is exercised automatically and without reflection. The skilled tennis player does not reflect on instructions before returning a volley — she exercises her knowledge of how to return a volley automatically. Additionally, the fact that exercises of theoretical knowledge are guided by propositions or rules seems to entail that they involve instructions that are universally applicable — the person acting on theoretical knowledge has an instruction booklet, which she reflects upon before acting. In contrast, part of the skill that constitutes skill at tennis involves reacting to situations for which no instruction manual can prepare you. The skilled tennis player is skilled in part because she knows how to adjust her game to a novel serve, behavior that does not seem consistent with following a rule book.

The thought that aptitude at acquiring skills at practical activities is different from aptitude at acquiring knowledge of truths affects our most fundamental interactions with others. When our child exhibits skill at a physical activity, and and an initial lack of interest in mathematics, we might suppose that the child has aptitude for practical activities but not intellectual pursuits (and vice versa).

But once one begins to bear down upon the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cracks appear. When one acquires a practical skill, one learns how to do something. But when one acquires knowledge of a scientific proposition, that too is an instance of learning. In many (though not all) of the world’s languages, the same verb is used for practical as well as theoretical knowledge (for example, “know” in English, “savoir” in French). More important, when one reflects upon any exercise of knowledge, whether practical or theoretical, it appears to have the characteristics that would naïvely be ascribed to the exercise of both practical and intellectual capacities. A mathematician’s proof of a theorem is the ideal example of the exercise of theoretical knowledge. Yet in order to count as skilled at math, the mathematician’s training — like that of the tennis player — must render her adept in reacting to novel difficulties she may encounter in navigating mathematical reality. Nor does exercising one’s knowledge of truths require active reflection. I routinely exercise my knowledge that one operates an elevator by depressing a button, without giving the slightest thought to the matter. From the other direction, stock examples of supposedly merely practical knowledge are acquired in apparently theoretical ways. People can and often do learn how to cook a risotto by reading recipes in cookbooks.

Perhaps one way to distinguish practical knowledge and theoretical knowledge is by talking. When we acquire knowledge of how to do something, we may not be able to express our knowledge in words. But when we acquire knowledge of a truth, we are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Somebody may know how to make a baby laugh but not be able to express how they do it. But if someone knows that Washington is the capital of the United States, they are presumably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what we are able to express in words and what we are unable to so express does not track any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knowledge. I may know that the secret password is 415XH, but I may not be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 I may only be able to press the keys when given a keypad (the knowledge resides, so to speak, in my fingers). One might then think that being able to express something in words is not necessary for theoretical knowledge. Conversely, one may think that anyone who knows how to do something is able to express that knowledge in words. After all, someone who knows how to make a baby laugh can, when asked how to do it, say, “This is the way to make a baby laugh,” while he makes a baby laugh.

I have argued here (and at length elsewhere) that once one bears down on the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knowledge and knowledge of truths, it breaks down. The plumber’s or electrician’s activities are a manifestation of the same kind of intelligence as the scientist’s or historian’s latest articles — knowledge of truths. It is true that someone might be adept at car mechanics and hopeless at philosophy. But it is also true that someone might be adept at theoretical physics and hopeless at philosophy. Distinctions between what one is adept at and what one is not adept at do not correlate with the folk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pursuits. If only to appropriate student loans rationally, we must also recognize distinctions between professions, the mastery of which requires learning many and perhaps more complex truths, and professions that one can master more easily. But these are distinctions along a continuum, rather than distinctions in kind, as the folk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pursuits is intended to be.

There are barriers in our society erected by a false dichotomy between practical work and theoretical reflection. If someone develops early on a skill at repairing cars, she may falsely assume that she will not be adept at literary analysis or theorem proving. This robs not only her of opportunities but also society of a potentially important contributor to literary analysis or mathematics. The reward structure of society also assumes it, reflected in both the pay and the cost of pursuing what are thought of as the theoretical pursuits. The supposed distinction also operates on an everyday level. If one spends one’s time repairing cars, one may think that one does not have the appropriate capacities to evaluate the arguments of economic “experts” on television. One might then feel alienated from such discussions and find one’s sense of alienation reflected in the angry rhetoric of propagandist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is used to warehouse society into groups. It alienates and divides. It is fortunate, then, that it is nothing more than a fiction.

Jason Stanley is professor of philosophy at Rutgers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three books for Oxford University Press, “Knowledge and Practical Interests,” “Language in Context” and “Know How.” More work can be found at his Web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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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3물리학과_철학은_어울릴_수_있는가-NYT23.pdf

뉴욕타임즈

사설

2012. 05. 10

물리학과 철학은 어울릴 수 있는가?

개리 거팅 씀

 

스톤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시사적인 주제나 불변하는 주제에 대해 논하기 위한 공간이다.

 

물리학자들은 최근 철학자들을 힘든 시기로 몰아넣어왔다. 스티븐 호킹은 작년 한 연설에서 철학자들이 과학과 보조를 맞추지 못해왔기 때문에 철학은죽었다”고 주장했다. 더 최근에는 로렌스 크라우스가 저서인()로부터의 우주: 왜 무()가 아닌 유()인가?”에서철학과 신학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우리 존재에 대한 정말 근본적인 질문들을 혼자 힘으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저명한 과학 철학자인 데이비드 알버트는 크라우스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폄하했다. “내가 보기에우주가 무()에서 출발했을 지도 모른다는 크라우스의 이 주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는 크라우스가 완전히 틀렸으며 그의 종교적, 철학적 비평가들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것이다.” 알버트의 이론 물리학 박사 학위를 고려하지 않은 크라우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알버트를바보 같은 철학자”라고 받아 쳤다. (크라우스는 최근에 쓴 과학적 미국인 기사에서 입장을 다소 누그러트리고 있다.)

크라우스의 실수: 과학 실험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 진리 결정 요인이라는 믿음

필자는 토론 수준을 약간 높일 수 있을지 알아보려 한다. 다소 불쾌한 언사를 했지만 크라우스는 철학자들이근본적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데 공헌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인용한혼자 힘으로”라는 그의 말은 일반적인 자질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버트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과학 철학자들은 과학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그들의 학문에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물리학자와 철학자 모두의 감각을 통합하는 생각 한 줄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전체로서의 물질 (물리적) 우주에 연관성이 없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신의 존재를 옹호해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주는 무()에서 기원해야겠지만, 물질이 무()에서 발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한 한 가지 대응으로서 우주는 항상 존재해왔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발생은 일어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 현대 우주론으로 충분히 정립된 빅뱅 이론은 흔히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한다.)

크라우스는 이런 종류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가 말하는 이유는 그 주장의 효력이()”의 의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주론적 맥락에서()”의 의미는 과학이 그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바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 “()”에 대한 한 가지 설득력 있는 과학적 의미는빈 공간”이다. , 기초적인 분자가 없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 따르면 분자는 빈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주(, 모든 기초 분자와 그에 따라 이들이 형성하는 것들)는 무()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분자가 빈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빈 공간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분자가 없을 때조차 비어있는 공간에 물성(物性)을 줄 수 있는 불안정한 가상 구역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역은임의적” 분자 생산을 허용하는 법칙들로 지배된다. 알버트는 가상 구역이 분자가 발생하는어떤 물질”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크라우스는 수긍하지만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묶는 오랜 기간 탐구된 중력 양자 이론이 단순히 그 이론 법칙의 속성 상 빈 공간 그 자체의 자발적 생산을 허용할 진일보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에서 발생한 공간과 구역, 분자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알버트는 물리 법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물리 법칙들은 무()가 아니라 유()인데 그들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인내심을 발휘하는 크라우스에 따르면다원 우주”를 그럴 듯 하게 제시하는 또 다른 유망한 이론적 접근법이 있다. , 고유한 자연 법칙을 갖는 자기 수용적, ()상호적 우주들이 무한하게 속할 수 있는 집합체를 말한다. 사실 다원 우주는 당연히 가능한 모든 법칙 집합을 갖는 우주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속한 특정 우주 때문에 기능하는 법칙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론 알버트는 다원 우주 그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법칙으로 지배된다고 대응할 수 있다.

알버트는 어디에서나 자연 법칙이 존재하며, 이 법칙은 항상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 어떤 물리적인것” (분자, 구역 등) 에 적용된다고 결론 짓는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유()는 사실 무()에서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것은 알버트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진 경우처럼 보인다. “()”라는 의미 쓰임에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절대적인 쓰임이 있다. 어떤 면에서 크라우스는 단지 고집스럽게 이런 사용법을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크라우스가 철학을 좀 더 안다면, 이런 절대적인 쓰임과 그에 따라 존재가 무()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많은 철학자들의 언급을 쉽게 인용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펼치는 주장에 대한 훌륭한 조사로서 로이 소렌슨의 스탠포드 백과사전 기사인()”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가해성에 대한 많은 철학적 비판을 넘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존재는 무()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데 대한 강한 반대가 있어왔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흄은각각의 존재는 단순히 발생하지 않음, 즉 존재의 발생에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우주의 발생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주가 발생했다면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흄과 그의 동조자들은 우주의 원인에 대한 문제를 실증 과학에 맡겨두는 데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다.

크라우스는존재는 무()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철학에 호소할 수 있지만, 과학 실험을 그의 표현으로 세상에 대한궁극적 진리 결정 요인”이라고 단순히 가정함으로써 철학적 비판에 직면한다. 과학의 성공으로 인해 수준 높은 진리 탐색을 위한 실험적 방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진실을 과학적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해서 과학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만 다루기 때문에 인지 경험으로 전혀 알 수는 없는 어떤 존재, 예를 들면, 의식이나 도덕, (), 신 같은 것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인지 경험을 넘어서는 존재는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적 실험이 아닌 철학적 논증이 필요할 것이다.

크라우스는 철학자들이 세상의 본성에 대한 문제들을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에 대해 당연히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이 없으면 그의 주장은 지식이 아닌 신뢰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개리 거팅은 노트르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노트르담 철학 평론의 편집자이다. 그는 최근작인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생각: 1960년 이후 프랑스 철학”의 저자이며, 스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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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Opinionator - A Gathering of Opinion From Around the Web


120513Can Physics and Philosopy get along-NYT.docx


MAY 10, 2012, 9:00 PM

Can Physics and Philosophy Get Along?

By GARY GUTTING

The Stone is a forum for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issues both timely and timeless.

Physicists have been giving philosophers a hard time lately. Stephen Hawking claimed in a speech last year that philosophy is “dead” because philosophers haven’t kept up with science. More recently, Lawrence Krauss, in his book, “A Universe From Nothing: Why There Is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has insisted that “philosophy and theology are incapable of addressing by themselves the truly fundamental questions that perplex us about our existence.” David Albert, a distinguished philosopher of science, dismissively reviewed Krauss’s book: “all there is to say about this [Krauss’s claim that the universe may have come from nothing], as far as I can see, is that Krauss is dead wrong and his religious and philosophical critics are absolutely right.” Krauss — ignoring Albert’s Ph.D. in theoretical physics — retorted in an interview that Albert is a “moronic philosopher.” (Krauss somewhat moderates his views in a recent Scientific American article.)

Krauss’ mistake: his belief that scientific experiment is the “ultimate arbiter of truth” about the world.

I’d like to see if I can raise the level of the discussion a bit. Despite some nasty asides, Krauss doesn’t deny that philosophers may have something to contribute to our understanding of “fundamental questions” (his “by themselves” in the above quotation is a typical qualification). And almost all philosophers of science — certainly Albert — would agree that an intimate knowledge of science is essential for their discipline. So it should be possible to at least start a line of thought that incorporates both the physicist’s and the philosopher’s sensibilities.

There is a long tradition of philosophers’ arguing for the existence of God on the grounds that the material (physical) universe as a whole requires an immaterial explanation. Otherwise, they maintain, the universe would have to originate from nothing, and it’s not possible that something come from nothing. (One response to the argument is that the universe may have always existed and so never came into being, but the Big Bang, well established by contemporary cosmology, is often said to exclude this possibility.)

Krauss is totally unimpressed by this line of argument, since, he says, its force depends on the meaning of “nothing” and, in the context of cosmology, this meaning depends on what sense science can make of the term. For example, one plausible scientific meaning for “nothing” is “empty space”: space with no elementary particles in it. But quantum mechanics shows that particles can emerge from empty space, and so seems to show that the universe (that is, all elementary particles and so the things they make up) could come from nothing.

But, Krauss admits, particles can emerge from empty space because empty space, despite its name, does contain virtual fields that fluctuate and can give empty space properties even in the absence of particles. These fields are governed by laws allowing for the “spontaneous” production of particles. Virtual fields, the philosopher will urge, are the “something” from which the particles come. All right, says Krauss, but there is the further possibility that the long-sought quantum theory of gravity, uniting quantum mechanics and general relativity, will allow for the spontaneous production of empty space itself, simply in virtue of the theory’s laws. Then we would have everything — space, fields and particles — coming from nothing.

But, the philosopher says, What about the laws of physics? They are something, not nothing—and where do they come from? Well, says Krauss — trying to be patient — there’s another promising theoretical approach that plausibly posits a “multiverse”: a possibly infinite collection of self-contained, non-interacting universes, each with its own laws of nature. In fact, it might well be that the multiverse contains universes with every possible set of laws. We have the laws we do simply because of the particular universe we’re in. But, of course, the philosopher can respond that the multiverse itself is governed by higher-level laws.

At every turn, the philosopher concludes, there are laws of nature, and the laws always apply to some physical “stuff” (particles, fields, whatever) that is governed by the laws. In no case, then, does something really come from nothing.

It seems to me, however, that this is a case of the philosopher’s winning the battle but losing the war. There is an absolute use of “nothing” that excludes literally everything that exists. In one sense, Krauss is just obstinately ignoring this use. But if Krauss knew more philosophy, he could readily cite many philosophers who find this absolute use — and the corresponding principle that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 unintelligible. For an excellent survey of arguments along this line, see Roy Sorensen’s Stanford Encyclopedia article, “Nothingness.”

But even if the question survives the many philosophical critiques of its intelligibility, there have been strong objections to applying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to the universe as a whole. David Hume, for example, argued that it is only from experience that we know that individual things don’t just spring into existence (there is no logical contradiction in their doing so). Since we have no experience of the universe coming into existence, we have no reason to say that if it has come to be, it must have a cause. Hume and his followers would be entirely happy with leaving the question of a cause of the universe up to empirical science.

While Krauss could appeal to philosophy to strengthen his case against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he opens himself to philosophical criticism by simply assuming that scientific experiment is, as he puts it, the “ultimate arbiter of truth” about the world. The success of science gives us every reason to continue to pursue its experimental method in search of further truths. But science itself is incapable of establishing that all truths about the world are discoverable by its methods.

Precisely because science deals with only what can be known, direct or indirectly, by sense experience, it cannot answer the question of whether there is anything — for example, consciousness, morality, beauty or God — that is not entirely knowable by sense experience. To show that there is nothing beyond sense experience, we would need philosophical arguments, not scientific experiments.

Krauss may well be right that philosophers should leave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the world to scientists. But, without philosophy, his claim can only be a matter of faith, not knowledge.


Gary Gutting is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and an editor of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He is the author of, most recently, “Thinking the Impossible: French Philosophy since 1960,” and writes regularly for The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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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9경력재창조-HBR09-13.pdf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블로그 네트워크

Description: Christopher Bowe 

크리스토퍼 보위

크리스토퍼 보위는 제약 및 의료 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스크립 사의 미국 의료 분석 전문가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경력을 재창조하라.

2012 5 4일 금요일 / 크리스토퍼 보위 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처럼 혼란스러운 세계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회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내재된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주요 장벽은 경험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 우리는 경험들을 한 가지 종류의 일이나 경력으로만 분류한다. 그런 분류를 피해야 한다. 그렇게 구분한 벽들을 부숴버리고 모든 경험과 지식, 기술을 섞어서 정확한 배합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비교적 근간에 한 존경 받는 임원 전문 경력 전문가가 필자에게상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 잠재적 고용주들이 채워야 하는 상자 중 하나로 끼워 맞추기 위해 필자가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하고자 구하던 중인 일자리의 종류 범위를 크게 축소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는 내 다양한 경험과 기술, 경력에 대한 기술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가 위험스러운 잘못된 조언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혁신이란 경계를 무너뜨려서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창조해야 하지 않는가?

필자는 4년이라는 기간에 두 개의 큰 경력을 쌓았다. 언론계를 떠나 빅 파머 사 최고경영자의 전략 고문으로 일한 후 산업체 분석 및 경영 컨설팅 분야로 이직했다. 특히 그런 경우들을 통해 내 인생을 통틀어 꾸준히 놀라웠던 점은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해서 나 자신을 재창조하고 음악인들이 음향 혼성기를 사용해서 가장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일과 상당히 유사하게 가장 적합한 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필자가 어릴 때 처음으로 가졌던 꿈은 락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혼성기는 소리크기 제어를 위해 수백 개의 조절기와 민감한 소리 조절 막대가 있는 크고 인상적인 계기판이다. 그런 조절 장치들은 각 악기를 조절하는 세로줄에 배열되어 있다. 실황이든 녹음이든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는 혼성기를 사용해서 목소리를 포함한 각 악기의 정확한 음색과 소리 크기를 혼합하여 완벽한 소리를 낸다. 혼성이 잘 되면 음악 소리는 각각의 악기와 목소리를 단순히 합친 소리보다 더 크고 좋은 소리로 변한다.

이것을 개인 혁신을 위한 모형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음향 혼성기에서 조절되는 악기처럼 삶에서 얻은 각각의 경험과 기술을 시각화해야 한다. 이 경험이더 큰 소리”를 내고 이 기술이더 작은 소리”를 낸다면 어떻게 될까? 다양한 일에서 얻은 오랜 경험들 중 어떤 종류가 자신의 전체적인소리”를 바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필자가 고차원적으로혼성”시켜서 나 자신을 혁신시켰던 과거 경험 중 간단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옛날에 필자는 여름 아르바이트로 (하수처리장이라고 부르던) 폐수 처리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프레드라는 말총머리 경력자가 필자에게 조언했다. “불도저를 운전할 수 있냐고 물으면 불도저를 운전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필자는 이 경험을 훨씬 더 높은 직위에 초점을 맞춰 대입해서 빅 파머 사의 최고경영자를 돕고자 이직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대해 생각도 못했을 지 모른다.

또 다른 일례는 자질 수행과 관련 있다. 과거 필자의 직책들은 필자를 최대한 청자의 입장에 있게 했다. 필자가 연출자 같은 자질을 가졌어도 그 소리는 필자의 배합 속에 사실상 최근까지 수십 년 동안 묻혀져 있었다. 이런 능력을고차원적으로 혼합한 결과 필자는 현장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더 많이 택하는 데 편안해짐으로써 분석 안들을 제시하고 경영 자문을 할 수 있었다.

새롭고 기발한 조합으로 자신을 만드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하다. 음악 공연에서와 같은 실시간 이력에서 배합은 정적이지 않다. 다양한 노래의 다양한 부분에서 감정과 음색, 소리 크기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관객 앞에서 제 때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자질의소리 크기”를 잘 조절하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http://blogs.hbr.org/cs/2012/05/reinvent_your_career_by_writin.html#.T6lCa9WjDjE.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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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9Reinvent Your Career by Writing Your Own Narrative-H.docx

HBR Blog Network

설명: Christopher Bowe

CHRISTOPHER BOWE

Christopher Bowe is the U.S. health care analyst for Scrip, which provides information to the pharmaceuticals and health care industries.

Reinvent Your Career by Writing Your Own Narrative

1:45 PM Friday May 4, 2012  by Christopher Bowe 

A topsy-turvy world like the one in which we live offers us tremendous opportunities. But to tap them, we must remove the barriers within ourselves.

The crucial barriers are the ways we compartmentalize our experiences — keeping them uniquely bound to one kind of job or career. Avoid such compartmentalization. Break open those compartments and mix all of your experiences, knowledge, and skills into the precise blend that makes a new you.

Not long ago, I had a respected executive recruiter tell me I needed to "climb in a box" — drastically narrow what kind of work I was seeking to do in a new career move in order to get potential employers to fit me into one of the boxes they needed to fill. In effect, he was telling me that my various experiences, skills, and career narratives were mutually exclusive. I think that he was giving me dangerously wrong advice. Isn't real innovation supposed to blow through thresholds to create something of new value?

I've made two major career moves in the span of four years. I left journalism to work with a Big Pharma CEO as his counselor for strategic affairs and then transitioned to doing industry analysis and thought leadership. In those instances in particular and throughout my life the consistent surprise was how I could draw on different skills and experiences to reinvent myself and create the optimal mix much like musicians use sound mixing boards to create the best sound. (My first pursuit as a young man was to be a rock musician.)

A mixing board is a large, imposing console with hundreds of dials and sliding faders to control volume. They are arranged in columns that control each instrument. A band playing music, whether live or recorded, uses a mixing board to blend in the precise tone and volume of each instrument, including voices, to make a complete sound. When mixed well, the music sound is transformed into something bigger and better than the the sum of the individual instruments and voices.

To use this as a template for personal innovation, visualize each of your experiences and skills in life as an instrument controlled on a sound mixing board. What if this experience were "louder" and this skill were "quieter"? What kinds of old experiences from divergent things could be used in new ways to change the overall "sound" of you?

Here are two simple examples of past experiences I've "mixed" higher to innovate me. I worked at a wastewater treatment plant (the sewer plant, we called it) as a summer job way back. One day a pony-tailed veteran named Fred gave me some advice: "If they ask if you can drive the bulldozer, you drive the bulldozer." I brought this experience much higher into my focus when going to Big Pharma to work for the CEO. Without it, I might never have even positioned myself for the role.

Another singular example is with performing skills. Previously my career roles meant that I was in maximum listening mode. Although I had them, stagecraft-performing skills were virtually muted for decades in my mix until recently. Mixing these higher has helped me to be comfortable taking a new tack in being on stage more, presenting analytical ideas and thought leadership.

The permutations of building a new innovative mix of you are nearly endless. In a real-time career, as in live music, a mix does not stay static. Different parts of different songs require changes in feeling, tone, and volume. Similarly, one should always be prepared to tweak the "volumes" of what makes you valuable to your audience at the time.

http://blogs.hbr.org/cs/2012/05/reinvent_your_career_by_writin.html#.T6lCa9WjDjE.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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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영>한) 2012. 5. 9. 19:01


120229진정한 혁신-NYT120416-20.docx

2012 2 25

진정한 혁신

존 거트너

 

혁신은 항상 미국을 정의해온 용어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의 연두교서에서 말했다. 반대하기 힘든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혁신적인 미국 회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처럼 말이다. 그리고 불경기 앞에서도 실리콘 밸리에 있는 불굴의 기업인들은 세상을 바꿀만한 작지 않은 야심을 갖고 우후죽순으로 신생 기업을 일으켜왔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미국의 혁신 문화를 너무 크게 이상화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독창적인 디지털 기업들이 창의성을 위해 우리가 생각해봄 직한 최적의 환경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회의에 이르게 된 이유는 과거 미국의 독점 전화 회사였던 AT&T의 예전 연구 개발 기관인 벨 연구소에서의 혁신 과정을 5년 동안 보았기 때문이다.

왜 벨 연구소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벨 연구소는 우리 나라의 기술 회사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오랜 혁신적 우위가 실제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많은 교훈을 준다. 하지만 벨 연구소는 또한 오늘날 혁신에 대해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야심 찬 방법을 제시한다. 연구원들은 복잡한 국가적 통신망에 필요한 점진적 발전 방안에 대해 연구했고 그와 동시에 상상 가능한 가장 혁명적인 발명을 위해 훨씬 앞서서 생각했다.

실제로 기후 변화처럼 난해해 보이는 문제들을 처리할 혁신적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벨 연구소의 예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벨 연구소는 아폴로 프로그램을 규모나 범위, 비용 면에서 맨하탄 프로젝트와 대등하게 하려고 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목적과 엄청난 성공은 우리 모두를, 그리고 우리의 새 기계를 다 같이 연결하는 것이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향후 주주들에게 보내는 최근의 편지에서 회사의 사훈 중 하나가 빨리 움직이고 깨트리자라고 말했다. 벨 연구소의 사훈은 오히려 사려 깊게 움직이고 건설하자였을 지도 모른다. 이런 사훈은 계산자를 가지고 다녔으며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들의 옛 가치에 대한 이상한 추종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벨 연구소가 이룩한 성과를 생각해보자. 20세기라는 긴 시간 동안 벨 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과학 기구였다. 벨 연구소의 전체 발명 목록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마 1947년에 발명한 트랜지스터일 것이다. 이것은 이제 모든 디지털 제품과 동시대 삶의 기반이다. 이 작은 기기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일은 전기 신호를 증폭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전기 발화로 트랜지스터는 켜졌다 꺼졌다 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비트라는 정보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이 정보는 숫자 1이나 0으로 표시된다. 요즘에는 우리의 전화기나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칩들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다.

벨 연구소는 다른 놀라운 발명품들도 만들어냈다. 모든 태양열원 기기의 효시인 실리콘 태양 전지가 그 곳에서 고안되었다. 벨 연구소 연구원 두 명이 레이저에 대한 최초 특허를 냈고, 동료들이 많은 초기 시제품을 만들었다. (모든 DVD 플레이어에는 벨 연구소에서 발명한 종류와 유사한 쌀 한 톨 정도 크기의 레이저가 있다.)

벨 연구소는 최초의 통신 위성을 고안 및 개발했고, 디지털 통신을 이론화하고 개발했으며, 최초의 핸드폰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하결합소자, CCD로 알려진 기기가 그 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이제 그것은 디지털 사진 기술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벨 연구소는 또한 최초의 광섬유 케이블 시스템을 구축했고 차례로 기가 바이트의 정보가 전세계를 묶을 수 있게 하는 발명을 했다. 벨 연구소는 프로그래밍 분야에도 능숙했다. 연구소의 컴퓨터 학자들은 유닉스와 C 언어를 개발했다. 이 두 가지는 오늘날 가장 필수적인 운영 체제와 컴퓨터 언어의 기초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들은 실용 기술 몇 개일 뿐이다. 벨 연구소의 어떤 연구원들은 물리학과 화학, 천문학, 수학의 경계를 엄청나게 넓혔던 논문을 집필했다. 연구소의 기타 공학자들은 모기업 벨 사의 산업체 공장을 위해 특별한 (새로운 제품이라기 보다) 새로운 과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사실, 제조업 제품의 고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요즘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통계 분석 방식인 품질 통제는 벨 연구소의 수학자들이 처음 적용했다.

그러면 뉴저지 소재 벨 연구소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일개 과학자와 공학자 단체가 어찌 그렇게 놀라운 신기술들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내놓았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가 지금 현재라고 부르게 된 미래를 창조했다. 게다가 그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언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가?

벨 연구소의 창의적 문화에 기여한 일등공신은 머빈 켈리였다. 아마 켈리 씨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미주리 시골 지역의 넉넉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서 시카고 대학교에서 물리학도로 교육을 받은 그는 AT&T 사의 연구소로 입사했다. 1925년과 1959년 사이에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켈리 씨는 연구원에서부터 이사회 회장까지 승진했다. 1950년에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자신의 연구소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강연했다.

켈리 씨는 기본적으로 그의 연구소와 같은 창의적인 기술 연구소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인 비판적인 집단이 생각을 바쁘게 주고 받도록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혁신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켈리 씨는 물리적인 인접성이 최선이라고 확신했다. , 전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벨 연구소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이론학자들과 기술 전문가들을 한 지붕 아래 수용했다. 트랜지스터 프로젝트를 함께 연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섞인 사람들은 물리학자와 금속공학자, 전기공학자들이었다. 이론과 실험, 제조 전문가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유능한 콘서트 홀 지휘자처럼 켈리 씨는 과학적 주제들 사이, 연구자와 개발자 사이, 개인과 그룹 사이에 조화나 때로는 긴장을 유발했다.

켈리 씨의 접근법 중 한 가지는 설계였다. 그는 1941년 뉴저지 머레이 힐에 완공된 건물의 설계를 개인적으로 도왔는데 그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그 건물의 복도 중 몇 개는 아주 길어서 그 끝을 보면 소실점으로 사라질 정도로 설계되었다. 그 기나긴 복도를 수많은 지인과 문제들, 주의를 돌릴 만한 것이나 생각들과 마주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인 물리학자 한 명은 산적한 철 조각들 옆을 굴러가는 자석과 같았다.

또 다른 접근법은 성취욕이었다. 벨 연구소는 때때로 상아탑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더 적절한 묘사는 공장으로 내려가는 상아탑이다.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이나 공학자들에게 그들 기관의 궁극적 목표가 새로운 지식을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에너지 부 장관인 스티븐 추는 1980년대 초 벨 연구소에서 한 연구로 1997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벨 연구소 같은 응용 과학 환경에서 연구하면 천재의 핵심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벨 연구소에서는 순수 과학 연구를 추구하는 연구원들에게도 자신들의 연구가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한편 켈리 씨가 추진하곤 했던 또 다른 방법은 조직화였다. 그는 벨 연구소의 위성 시설을 모 전화사의 여러 제조 공장에 설치했다. 이로써 앞서 언급한 모든 새로운 생각들을 물건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교류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공학자들도 공장 근로자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제조업은 갈수록 미국 밖으로 빠져나갔으므로 제조업과 함께 산업 지식에 대한 전체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지식이 벨 연구소가 새로운 혁신을 추진할 수 있게 하곤 했다.

켈리 씨는 특히 연구에 있어서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켈리 씨가 책임자였을 때 몇몇 과학자들은 자치권이 대단히 커서 켈리 씨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대체로 연구를 허가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의 전작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연구진을 결성했을 때, 2년 이상이 흘러서야 발명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켈리 씨가 트랜지스터의 대량 생산 문제를 처리할 또 다른 팀을 결성했을 때는 그 과제를 공학자 한 명에게 주면서 계획안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그 동안 켈리 씨 자신은 유럽에 가겠다고 했다.

요컨대 켈리 씨는 사람들이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창조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켈리 씨에게 벨 연구소는 많은 과학적인 모범, 즉 이런 선구자들이 사실상 주제에 대해 정의하는 책을 썼기 때문에 흔히 일컬어지는 그 책을 쓴 사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구자들을 일상 속에 섞여 들어가게 할 필요도 있었다. 칸막이 사무실이 나타나기 전 시대에 벨 연구소의 전 직원은 사무실 문을 열어 놓고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던 그 연구소에서의 새로운 채용은 으레 연구 책임자가 주도했고 그 책을 쓴 사람을 찾곤 했다. 클로드 섀넌 같은 유명학 수학자나 윌리엄 쇼클리 같은 전설적인 물리학자에 대해 질문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어떤 젊은 연구원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정책은 그런 연구원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머빈 켈리 씨의 혁신 전략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가 있었는데 다른 요인들과 똑같이 중요하거나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켈리 씨는 빨리 말하고 빨리 걸었고, 계단을 뛰어 오르내렸다. 하지만 연구원들에게는 자유뿐만 아니라 시간을 주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몇 해에 해당하는 많은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오늘날 같이 더 빠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누군가는 벨 연구소가 오늘날의 기술 회사들과 달리 독점적인 지위로 보장되는 기댈 만한 큰 수익을 내는 모 회사를 위해 일하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누구도 분기 별 수익을 올리기 위해 기준치를 맞추거나 경쟁사에 앞서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은 사실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 어떤 정의에 따르면, 혁신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사회와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면서 (켈리 씨가 일전에 말했듯이) “더 좋거나 더 저렴하게, 아니면 둘 다기능할 수 있는 중요한 신제품이나 새로운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요즘 혁신이라는 단어를 거의 아무 데나 사용한다. 그 단어는 스마트 폰 앱이나 소셜 매체 접근 도구를 설명할 수 있다. 트랜지스터나 핸드폰 시스템을 위한 청사진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거대하다. 한 종류의 혁신은 약간의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한다. 켈리 씨와 동료들이 벨 연구소에서 반복적으로 추구했던 또 다른 종류의 혁신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와 사회의 부와 복지를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만든다.

이렇게 다른 종류의 혁신을 합쳐 말함으로써 우리는 혁신적인 소비자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의 이익 추구 기업가들이 혁신적인 선임자들만큼 효과적이라고 믿게 되는 것 같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은 지지 받지 못한다. 벨 연구소에서 레이저와 트랜지스터, 태양 전지를 발명했던 팀들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해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신제품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수익성이 큰 산업 군을 창출했다.

혁신을 위한 단일한 최고의 방법은 없다. 실리콘 밸리가 보여준 여러 가지 방법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 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거대 독점 기업들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오늘날에는 통신 산업이 번영하고 있고, 고객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다양한 저렴한 기기들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예전 전화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었어도 AT&T는 신제품과 서비스 소개가 느렸으며, 거의 저렴하지도 않았다. 그에 대해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보다 더 보수적인 회사는 거의 없지만, 더 창조적인 회사는 아예 없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유산을 생각해보면 기술적 도약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기술적 단계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것은 또한 페이스북이 명백히 실천하고 있듯이 항상 빨리 움직이고 깨트린다든지 (구글이 설명했던 회사 철학인) 끊임없는 속도 예찬추구가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최선책도 아닐 것이다. 혁명은 빨리 일어나지만 서서히 시작된다. 우리는 반 세기도 넘는 옛 시절에 감수했던 위험과 투자했던 연구의 덕을 아직도 크게 보고 있다.    

 

존 거트너는 출간 예정인 생각 공장: 벨 연구소와 미국의 위대한 혁신 시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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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영>한) 2012. 5. 9. 19:00

설명: The New York Times

 

February 25, 2012

True Innovation

By JON GERTNER

“INNOVATION is what America has always been about,” President Obama remarked in his recent State of the Union address. It’s hard to disagree, isn’t it? We live in a world dominated by innovative American companies like Apple, Microsoft, Google and Facebook. And even in the face of a recession, Silicon Valley’s relentless entrepreneurs have continued to churn out start-up companies with outsize, world-changing ambitions.

But we idealize America’s present culture of innovation too much. In fact, our trailblazing digital firms may not be the hothouse environments for creativity we might think. I find myself arriving at these doubts after spending five years looking at the innovative process at Bell Labs, the onetime research and development organization of the country’s formerly monopolistic telephone company, AT&T.

Why study Bell Labs? It offers a number of lessons about how our country’s technology companies — and our country’s longstanding innovative edge — actually came about. Yet Bell Labs also presents a more encompassing and ambitious approach to innovation than what prevails today. Its staff worked on the incremental improvements necessary for a complex national communications network while simultaneously thinking far ahead, toward the most revolutionary inventions imaginable.

Indeed, in the search for innovative models to address seemingly intractable problems like climate change, we would do well to consider Bell Labs’ example — an effort that rivals the Apollo program and the Manhattan Project in size, scope and expense. Its mission, and its great triumph, was to connect all of us, and all of our new machines, together.

In his recent letter to potential shareholders of Facebook, Mark Zuckerberg noted that one of his firm’s mottoes was “move fast and break things.” Bell Labs’ might just as well have been “move deliberately and build things.” This sounds like the quaint pursuit of men who carried around slide rules and went to bed by 10 o’clock. But it was not.

Consider what Bell Labs achieved. For a long stretch of the 20th century, it was the most innovative scientific organization in the world. On any list of its inventions, the most notable is probably the transistor, invented in 1947, which is now the building block of all digital products and contemporary life. These tiny devices can accomplish a multitude of tasks. The most basic is the amplification of an electric signal. But with small bursts of electricity, transistors can be switched on and off, and effectively be made to represent a “bit” of information, which is digitally expressed as a 1 or 0. Billions of transistors now reside on the chips that power our phones and computers.

Bell Labs produced a startling array of other innovations, too. The silicon solar cell, the precursor of all solar-powered devices, was invented there. Two of its researchers were awarded the first patent for a laser, and colleagues built a host of early prototypes. (Every DVD player has a laser, about the size of a grain of rice, akin to the kind invented at Bell Labs.)

Bell Labs created and developed the first communications satellites; the theory and development of digital communications; and the first cellular telephone systems. What’s known as the charge-coupled device, or CCD, was created there and now forms the basis for digital photography.

Bell Labs also built the first fiber optic cable systems and subsequently created inventions to enable gigabytes of data to zip around the globe. It was no slouch in programming, either. Its computer scientists developed Unix and C, which form the basis for today’s most essential operating systems and computer languages.

And these are just a few of the practical technologies. Some Bell Labs researchers composed papers that significantly extended the boundaries of physics, chemistry, astronomy and mathematics. Other Bell Labs engineers focused on creating extraordinary new processes (rather than new products) for Ma Bell’s industrial plants. In fact, “quality control” — the statistical analysis now used around the world as a method to ensure high-quality manufactured products — was first applied by Bell Labs mathematicians.

So how can we explain how one relatively small group of scientists and engineers, working at Bell Labs in New Jersey over a relatively short span of time, came out with such an astonishing cluster of new technologies and ideas? They invented the future, which is what we now happen to call the present. And it was not by chance or serendipity. They knew something. But what?

At Bell Labs, the man most responsible for the culture of creativity was Mervin Kelly. Probably Mr. Kelly’s name does not ring a bell. Born in rural Missouri to a working-class family and then educated as a physicist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he went on to join the research corps at AT&T. Between 1925 and 1959, Mr. Kelly was employed at Bell Labs, rising from researcher to chairman of the board. In 1950, he traveled around Europe, delivering a presentation that explained to audiences how his laboratory worked.

His fundamental belief was that an “institute of creative technology” like his own needed a “critical mass” of talented people to foster a busy exchange of ideas. But innovation required much more than that. Mr. Kelly was convinced that physical proximity was everything; phone calls alone wouldn’t do. Quite intentionally, Bell Labs housed thinkers and doers under one roof. Purposefully mixed together on the transistor project were physicists, metallurgists and electrical engineers; side by side were specialists in theory, experimentation and manufacturing. Like an able concert hall conductor, he sought a harmony, and sometimes a tension, between scientific disciplines; between researchers and developers; and between soloists and groups.

ONE element of his approach was architectural. He personally helped design a building in Murray Hill, N.J., opened in 1941, where everyone would interact with one another. Some of the hallways in the building were designed to be so long that to look down their length was to see the end disappear at a vanishing point. Traveling the hall’s length without encountering a number of acquaintances, problems, diversions and ideas was almost impossible. A physicist on his way to lunch in the cafeteria was like a magnet rolling past iron filings.

Another element of the approach was aspirational. Bell Labs was sometimes caricatured as an ivory tower. But it is more aptly described as an ivory tower with a factory downstairs. It was clear to the researchers and engineers there that the ultimate aim of their organization was to transform new knowledge into new things.

Steven Chu, secretary of the Department of Energy, won a Nobel Prize in 1997 for his work at Bell Labs in the early 1980s. He once said that working in an environment of applied science like Bell Labs “doesn’t destroy a kernel of genius, it focuses the mind.” At Bell Labs, even for researchers in pursuit of pure scientific understanding, it was obvious that their work could be used.

Still another method Mr. Kelly used to push ahead was organizational. He set up Bell Labs’ satellite facilities in the phone company’s manufacturing plants, so as to help transfer all these new ideas into things. But the exchange was supposed to go both ways, with the engineers learning from the plant workers, too. As manufacturing has increasingly moved out of the United States in the past half century, it has likewise taken with it a whole ecosystem of industrial knowledge. But in the past, this knowledge tended to push Bell Labs toward new innovations.

Mr. Kelly believed that freedom was crucial, especially in research. Some of his scientists had so much autonomy that he was mostly unaware of their progress until years after he authorized their work. When he set up the team of researchers to work on what became the transistor, for instance, more than two years passed before the invention occurred. Afterward, when he set up another team to handle the invention’s mass manufacture, he dropped the assignment into the lap of an engineer and instructed him to come up with a plan. He told the engineer he was going to Europe in the meantime.

In sum, he trusted people to create. And he trusted them to help one another create. To him, having at Bell Labs a number of scientific exemplars — “the guy who wrote the book,” as these standouts were often called, because they had in fact written the definitive book on a subject — was necessary. But so was putting them into the everyday mix. In an era before cubicles, all employees at Bell Labs were instructed to work with their doors open.

Saddled with a difficult problem, a new hire there, an anxious nobody, was regularly directed by a supervisor toward the guy who wrote the book. Some young employees would quake when they were told to ask a question of famous mathematicians like Claude Shannon or legendary physicists like William Shockley. Still, Bell Labs’ policy was not to turn them away.

THERE was another element necessary to Mervin Kelly’s innovation strategy, an element as crucial, or more crucial even, than all the others. Mr. Kelly talked fast and walked fast; he ran up and down staircases. But he gave his researchers not only freedom but also time. Lots of time — years to pursue what they felt was essential. One might see this as impossible in today’s faster, more competitive world. Or one might contend it is irrelevant because Bell Labs (unlike today’s technology companies) had the luxury of serving a parent organization that had a large and dependable income ensured by its monopoly status. Nobody had to meet benchmarks to help with quarterly earnings; nobody had to rush a product to market before the competition did.

But what should our pursuit of innovation actually accomplish? By one definition, innovation is an important new product or process, deployed on a large scale and having a significant impact on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can do a job (as Mr. Kelly once put it) “better, or cheaper, or both.” Regrettably, we now use the term to describe almost anything. It can describe a smartphone app or a social media tool; or it can describe the transistor or the blueprint for a cellphone system. The differences are immense. One type of innovation creates a handful of jobs and modest revenues; another, the type Mr. Kelly and his colleagues at Bell Labs repeatedly sought, creates millions of jobs and a long-lasting platform for society’s wealth and well-being.

The conflation of these different kinds of innovations seems to be leading us toward a belief that small groups of profit-seeking entrepreneurs turning out innovative consumer products are as effective as our innovative forebears. History does not support this belief. The teams at Bell Labs that invented the laser, transistor and solar cell were not seeking profits. They were seeking understanding. Yet in the process they created not only new products but entirely new — and lucrative — industries.

There’s no single best way to innovate. Silicon Valley’s methods have benefited our country well over the course of several decades. And it would be absurd to return to an era of big monopolies. Today’s telecom industries are thriving, and customers likewise have access to a dazzling range of affordable devices and services, which most likely would not have been true had the old phone company remained intact. Though it had custody of the world’s most innovative labs, AT&T introduced new products and services slowly, and rarely cheaply. As Time magazine once put it, “Few companies are more conservative; none are more creative.”

But to consider the legacy of Bell Labs is to see that we should not mistake small technological steps for huge technological leaps. It also shows us that to always “move fast and break things,” as Facebook is apparently doing, or to constantly pursue “a gospel of speed” (as Google has described its philosophy) is not the only way to get where we are going. Perhaps it is not even the best way. Revolutions happen fast but dawn slowly. To a large extent, we’re still benefiting from risks that were taken, and research that was financed, more than a half century ago.

Jon Gertner is the author of the forthcoming “The Idea Factory: Bell Labs and the Great Age of American 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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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망: 기획 기사

최선을 따라도 여전한 차선

고용 시장에서 여성들은 모두가 그렇게 좋은 연봉을 받지는 않는 유망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최상층에 도달하기 전에 멈추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아이린 카먼 / 2012 3 9

 

19세인 카리나 마르티네즈 양의 인생이 어머니의 인생보다 덜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믿을 만한 근거는 탄탄하다. 카리나의 어머니는 현재 47세인 실비아 씨로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하루에 11시간, 7일을 중노동해서 남편의 도움 없이 카리나와 8살인 그녀의 여동생을 키웠다. 하지만 장기간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인해 더욱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실비아 씨의 고객들이 소비를 줄임에 따라 주당 수입이 경기 침체 전 최고치였던 1,000 달러에서 3-400 달러로 급격히 감소했다. 실비아 씨 모녀가 850 달러인 월세를 낼 수 없을 때는 노숙자 보호 시설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카리나 양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보인다. 그녀는 오클랜드의 지역 대학인 레이니 대학에 재학 중이고, 4년제 대학교로 편입하기를 바라고 있다. 목표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심리학자가 되는 것이다. 카리나는 결혼을 안 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를 원하고, 실제로 결혼을 안 할지도 모른다. 카리나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배였고, 카리나는 5년 전에 어머니가 그를 떠나도록 설득해서 실비아 씨는 그렇게 했다. 띄엄띄엄 수리공으로 고용되는 카리나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더이상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리나는 모든 남자가 똑같지는 않지만, 엄마가 아빠한테 당한 경험을 본 이상은…”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고용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지 40년이 지나서, 성 대결은 줄어들고 현재까지만 그럴 지도 모르지만 저임금을 받는 남성들이 뒤쳐져있는 반면 교육이 여성의 진출에 일조하는 양극화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카리나 마르티네즈 양에게 대학은 가난을 탈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카리나는 고등 교육을 통해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미국의 여성들은 2008-09 학년도에 배출된 전문대 학사 학위자의 62퍼센트, 학사 학위자의 57퍼센트, 모든 석사 학위자의 60퍼센트, 박사 학위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심리학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이어서 일반적으로 학부 심리학 전공자 중 80퍼센트와 박사 학위자 중 76퍼센트를 차지한다.

어떤 여성들은 항상 가정을 벗어나서 일해왔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일하는 카리나 마르티네즈의 어머니를 비롯한 사람들은 특히 유색 인종 여성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직장 여성의 수와 보유 직업 군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이제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양육 후 일할 가능성이 높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사회학자인 알리 호쉬차일드 씨에 따르면, 1975년에는 18세 미만 자녀를 가진 전체 어머니 중 절반이 일을 했다. 2009년경 그 비율은 거의 3/4으로 증가했다. 진보 성향 연구 단체인 미국 진보 센터의 경제학 선임 연구원 헤더 부셰이 씨는 미국 가정 중 2/5에서 어머니가 가장이며, 전체 가정 중 1/5에서는 비혼모가 유일한 소득원이라고 말했다.

급여에 대한 성별 간 격차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쉬운 일부터 했기때문이다.              

만약 여성의 미래가 남성에 비해 유망하게 보인다면, 여성이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남성들, 특히 고교 교육까지만 받은 남성들의 미래가 어두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토 씨는 대학 교육으로 인한 재정적 회수율은 여느 때처럼 높다고 말했다. “중등 교육 이후에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학 학위일 필요는 없지만 배관이나 전기 기술자처럼 일종의 기술에 투자를 해야 하죠.”

여성이 우위를 갖는 듯 보이겠지만 다음의 말을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향후 수십 년 간 고용 성장이 여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와 서비스 분야처럼 부상하는 분야는 흔히 급여를 다 그렇게 잘 주는 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카리나 마르티네즈 양이 심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다면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분야로 진입하는 셈이다. 사실, 심리학에 대한 보상과 사회적 위상이 모두 낮아졌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 분야를 지배하게 되었고, 남성들은 그 외 분야로 가버렸다

모든 직종과 교육 수준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여전히 적은 급여를 받는다. 급여 격차는 남미 여성들의 경우 가장 큰데,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받는다면 이들은 60센트를 받는다. 고용 통계청에 따르면 입주 가정부와 가사 도우미들 간에도 여성들은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소수 남성들에 비해 83퍼센트만 받는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거시적인 관점이다. 이제 미시적인 관점을 보겠다. 중산층 가족의 안락함을 책임지기 위해 두 명의 소득원이 필요한 때, 여성들의 급여는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자녀와 가정을 돌보는 데 할애한다. 점점 더 많은 경우에 고용주들은 생계를 보장할 만한 임금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과 어울리는 직장 환경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제 여느 때처럼 성별 간 전쟁은 직장 전쟁터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빈곤층과 빈곤 남성

미국 연방 교육법 9조에 상응하는 법이 남성을 위해서도 존재하나?” 2010년 타임 지가 연방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모든 교육 활동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가리키며 빈정거렸다. (답은 그렇다. 9조는 성별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 나온 이유는 전략 컨설팅 업체 리치 어드바이저즈가 수행한 연구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 결과, 2008년 미국의 150대 도시 중 147개 도시에서 젊은 여성들의 소득이 남성들에 비해 8퍼센트 가량 많았다.

어쩌면 고용 시장에서 여성들의 성공담 출현에 대해 그렇게 자축하는 분위기는 수십 년에 걸쳐 성 불평등과 임금 격차에 대한 소식만 듣던 끝에 나온 신선한 이야기에 대한 열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선 연구 결과는 아이가 없는 미혼 도시 여성에게만 해당되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했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애당초 남성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경향이 있다. 1979년에 평균적인 대학 졸업자는 시간 당 급여가 고교 졸업자보다 대략 50퍼센트 높았고, 2009년경에는 거의 두 배가 더 높아졌다.

실질적으로 단순히 교육을 덜 받은 남성들이 뒤쳐지는 만큼 여성들이 앞서 나가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 고교 학력을 가진 남자가 예를 들어 노조에서 정한 급여를 주는 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부양하리라 기대할 수 있었던 시절은 꽤 멀어졌다. 워싱턴 소재 여성 정책 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대에 임금 격차를 줄이기 시작한 대략 절반 정도의 원인은 남성들의 실제 임금 하락 때문이었다. 그 때 이후 남성의 평균 임금은 여성 임금보다 더 빈번하게 동결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여성 임금이 애초에 더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들에게 경제적 기회 탐색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이다.

실제로 가구들이 최근 수십 년간 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렸던 주된 이유는 여성들이 직장에 나갔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부셰이 씨에 따르면 소득원이 두 명인 가구는 1973년부터 2006년까지 물가상승을 감안한 소득이 37퍼센트 가량 증가했다. 이는 여성이 단독으로 부양하는 가구에서 증가한 근 26퍼센트보다 크게 높지 않은 수치이다. “현실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중산층을 축소시켜왔고,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들의 기회를 여러 가지로 박탈해왔다는 거죠.” 부셰이 씨가 말했다. “이러다가 40년 후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시간 당 30달러를 번 사람들이 왜 12달러를 버는 데 만족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 않나요?’”

재정적 안정을 위해 결혼해야 했던 사람들은 여성이었다. 지금 가장 득을 보는 사람들은 남성이다. MIT의 오토 씨에 따르면 남성 고교 중퇴자는 적어도 대학에 입학했던 남성들보다 결혼할 가능성이 더 낮았는데, 중퇴자 비율은 백인들 중에서는 17퍼센트, 흑인들 중에서는 20퍼센트 가량이다. “남성의 소득 감소와 실업률 및 수감률 증가로 인해 그런 남성들은 결혼하기에 적절하지 않게 되어 버리죠.” 오토 씨의 말이다. “군식구일 뿐이니까요.” (참고기사: 우선은 사랑이고, 그 다음은글쎄, 학력에 달렸다.)

남성들의 재산 감소는 신문의 머리기사들이 남성후퇴라 경고했던 경기후퇴의 정점에 악화되었다. 이 때 건설 분야처럼 큰 타격을 입었던 직종에 있었던 남성들은 기반을 잃고 있었던 반면 여성 고소득자들은 우위를 점했다. 경기후퇴는 흔히 성별 간 급여 격차를 좁힌다는 점을 여성 정책 연구소가 밝혀냈다. 원인은 불안정한 보너스와 초과 근무 수당이 남성 급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별 간 차이는 적었다. 여성들의 평균 실제 소득은 2010년에 전혀 오르지 않았지만, 남성들의 급여는 근 1퍼센트 가량 줄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났다. 남성 지배적인 분야는 더 빠르게 회복되었던 반면, 주를 비롯한 지방 정부의 정리해고는 여성을 차별적으로 직장에서 내몰았다.

적어도 수십 년 이상 교육과 소득 수준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은 비교 가능한 직업에서 남성들보다 더 적은 급여를 예상할 수 있다. 급여에 대한 성별 격차가 앞선 여성 연구소가 측정한 대로 1960년 이후 진행된 추세로 줄어든다면, 2056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토 씨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 낙관적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미국 고용 시장에서 여성들은 향후 20년 안 어느 순간에 남성들보다 평균 소득이 더 많아질 겁니다.”

 

사다리를 오르다가 멈추기

계속되는 급여 차이 중 일부는 여성의 선택에 기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을 배우려는 카리나 마르티네즈의 결정처럼 말이다.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직업들이 의료처럼 전통적으로 여성 지배적이었던 분야에 있더라도 급여가 가장 높은 직업들은 공학과 기술, 기타 과학 관련 산업과 서비스를 포함하는 남성 지배적인 분야에 있습니다. 이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은 교육 정도가 남성들에 비해 여전히 많이 뒤쳐져 있지요.” 가정 경제학 전문 캘리포니아 (버클리) 법대 교수인 매리 앤 메이슨 씨가 말했다. (참고기사: 학교에서의 여성 성공급여에서는 출혈.)

미국 대학 여성 연합에서 진행한 200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 지배적인주제를 전공한 여성(과 남성)여성 지배적이거나 혼성적전공을 선택한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다. 주로 여성인 간병인은 2018년까지 절반 가량 증가하리라 예상되지만, 그들은 평균 20,460 달러에 불과한 연봉을 받는다. 초등학교 교사는 학사 학위 이상을 필요로 하지만 평균 연봉이 49,330달러 밖에 안 된다. 급여가 후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분야는 대개 남성전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생명의료 공학 (평균 연봉이 77,400달러이며, 2018년까지 직업 성장률 72퍼센트로 예상)과 네트워크 시스템 및 데이터 통신 분석 (평균 연봉 71,100달러, 2018년까지 직업 성장률 53퍼센트)이 있다.

이런 불균형이 가까운 시일 내에 바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여성 정책 연구소에 따르면, 민간 부문 노동력에 성별 간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한 때는 1972년이었다. 그 전에는 남성 지배적이었던 분야에 여성들이 진입했기 때문이었지만, 1996년 이후로는 대체로 그런 추세가 멈췄다. 최근 자료는 가장 어린 근로자들에게 성별 통합 추세가 실제로 역전되었음을 시사한다. “남성전공을 선택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동등한 급여를 받기에는 흔히 충분하지 않다. 여성 정책 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같은 교육과 성적, 배경이라면 졸업 후 첫 해에 남성 소득이 5퍼센트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다 그 격차는 더 벌어져서 십 년 후에는 12퍼센트 차이가 난다. 미국 진보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40년이 지나면 그 차이가 434,000달러에 이른다.

기업의 승진 사다리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여성들은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총인구 조사국의 미국 지역사회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처럼 급여가 좋은 분야에서조차 여성들은 2009년 전체 관리자 중 절반을 차지했으면서도 연봉이 최소 100,000달러였던 관리자들 중에서는 1/4밖에 되지 않았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근무하는 여성들의 적은 비율, , 포춘지 500대 및 1,000대 기업 중 3.6퍼센트에 해당하는 이 비율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참고기사: 여성들이 지배할 때) 기업체 여성들을 변호하는 국제 기관, 케이털리스트에 따르면, 임원진과 기업 이사진에서 여성들은 6년 전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 경력에 제동이 걸리는 현상은 그들이 중간 관리직에 있을 때 닥쳐오기 시작해서 상위로 올라가려고 할수록 영향을 받습니다.” 뉴욕 시 소재 인재 혁신 센터 창립자인 경제학자, 실비아 앤 휴렛 씨가 말했다. “38살이 되면, 알게 되죠.”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자녀 양육을 위한 여성들의 고용 시장 이탈이 급여 격차의 원인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최근 몇 년 새 제공된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여성들이 앞서 나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사회화된 방식에 따라 앞서 나가는데 필요한 공격성을 나타내는 일이 제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가을 발행된 케이털리스트에서 밝혀진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잠재력이 큰 여성들을 남성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 여성들은 사실 요구를 해왔지만 경영자의 자리까지 얼마나 빨리 나가는지에 대한 그들의 전략이 성과를 거의 얻지 못했다고 한다. 반대로 승진을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남성들은 야망이 더 적은 남성들에 비해 그 목표를 달성했다. 경영대학원 졸업생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급여 차이는 졸업 후 첫해에 4,600달러로 시작해서 경력의 중반 즈음에는 31,258달러로 늘어났다. 같은 회사에 머물렀던 여성들은 경력 중반까지 최소한 두 번을 이직했던 여성들보다 53,472달러를 덜 받았다. 남성들 사이에서 그 차이는 13,743달러였다. 케이털리스트의 결론에 따르면, 남성들은 잠재력에 따라 급여를 받고, 여성들은 입증된 능력에 따라 받는다.

여성들은 지도자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지도자로 양성되지도 않죠. 그리고 여성들은 특출한 경력과 자질, 경험이 있어도 선택 받지 못합니다.” 휴렛 씨의 말이다.

교육적 기량으로 여성들은 현 시점까지만 나아갈 수 있었다. “빌어먹을 십 년마다 같은 생애 주기 단계의 소득 상황에 처하죠.” 뉴저지 소재 스탁턴 경제 금융 이해 센터 소장 드보라 피가트 씨의 말이다. 피가트 씨에 따르면, 여성들은 조직에서 더 낮은 급여를 받는 일을 한다는 사실 외에도 결혼과 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으로 인해 경력 전체에 걸쳐서 주어지는 기회에서 피해를 본다.

성별 간 급여 격차는 왜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을까? 피가트 씨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들이 고용 시장에 진출했을 때, “우리가 쉬운 것부터 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자명한 차별을 불법으로 공표하게 했으며, 가정과 직장 사이의 긴장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진보는 여기서부터 더 어려워지기만 할 것이다.

 

직장과 생활 간 균형

기업들이 1980년대에 고용인들에게 유연한 업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안 캠벨 씨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경제 용어에 직장-생활 균형이라는 용어를 추가했던 예전 일하는 어머니 세대와 달리 캠벨 씨는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30세 남성이다. 그러나 그가 올 봄에 펜실배니아 대학 와튼 대학원에서 졸업해서 충분히 높은 급여를 제공했던 컨설팅 대기업에 재입사할 때, 그 곳에서 아직 여성들을 위한 조치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이용할 예정이다. , 전체 업무 시간의 80퍼센트를 일하고 전체 급여의 80퍼센트를 받는 것이다.

저는 1주일에 80시간을 일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장기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에요. 아마 어느 순간에는 30()에 큰 보너스를 받는 지를 신경 쓰기 보다는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겠죠.” 그가 말했다.

캠벨 씨에게 자녀가 생기면 그는 그의 어머니처럼 자녀와 함께 집에 있는 것을 생각해 볼 것이라 예상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내쉬빌에서 외과의사로 장시간 일하는 동안 집에서 그와 두 남매를 키웠다. 캠벨 씨는 자신의 아이들 엄마가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회에서 친구들은 대체로 맞벌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캠벨 씨는 사람들은 일을 통해 보상을 찾지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와튼 대학원 친구들 중 많은 수는 장기적인 재정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균형을 찾고자 하는 그의 계획이 부럽다고 한다.

요즘처럼 성 역할이 정립되지 않은 재택근무 시절에 사무실과 집의 연계는 계속해서 더 복잡하게 얽혀 들어 가고 있다. 보스턴 대학교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올리베티 씨는 여성들의 상대적 지위는 변해왔지만, 가정이 구성되고 전문화되는 방식과 고용시장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이런 상호작용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올리베티 씨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변호사 두 명이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를 원하면 보통, 아마도 합리적인 가정에 따르면 직업적 불이익이 있더라도 여성이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빼낼 것이다. 남성이 승진해서 대표 변호사가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인센티브와 경제적 능력이 모두 축소된다

남자들이 어느 정도 바뀌고 있어도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몫은 여성들에게 더 힘든 과제로 남아있었다. 여성들이 경제 활동에서 편안한 역할을 찾으려면 남성들에 비해 완전히 다른 계산을 해야 한다. 양육으로 인한 물리적인 일 이상이 따라오는 것이다. 맞벌이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도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가정 내 잡일 중 대부분을 떠맡는다. 인구학자 수잰 비앙키 씨에 따르면, 1965년 이후 남성들은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데 할애하는 시간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렸지만, 엄마들이 소비하는 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비앙키 씨는 드물게 존재하는 주부 아빠들이 같이 사는 직장 엄마보다 집안일과 양육에 평균적으로 여전히 더 적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발전은 확실해 보인다. 1989년에 사회학자 호쉬차일드 씨는 직장 엄마들이 남편에 비해 1년에 4주를 추가로 집안일에 소비한다고 밝혔다. 집안일은 자신의 저서에 붙인 제목처럼 두 번째 교대 업무인 것이다. 더 최근 자료들은 1년에 가정일 2주라는 차이를 나타낸다. 25년 동안 여성들의 추가적인 교대 업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길이는 반으로 줄었네요.” 호쉬차일드 씨가 말했다.

수년 동안 가정과 직장 간 행복하고 생산적인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에 대한 논의의 선두에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기업 간부들이 있었다. 이안 캠벨 씨가 알고 있듯이 이러한 논의는 여성들에게만 솔깃한 것이 아니다. 2005년 포춘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남성 임원 중 84퍼센트가 업무 외적인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일에 대한 성취욕을 깨닫게 하는 업무 선택안을 원한다고 말했으며, 절반 이상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급여를 더 적게 받아도 좋다고 했다. 이상한 움직임: 1960년대 초 여성의 신비와 미국 여성이라는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스테파니 쿤츠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많은 직장과 가정 간 갈등을 겪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근로자뿐만 아니라 반려자와 가족 구성원으로서 더 유기적인 정체성을 개발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나타내지요.”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유연성을 찾으려는 욕구는 성별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스톤 대학의 직장과 가족 센터에서 2004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이 저임금 근로자들의 이탈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여론조사는 기업의 양육 보조금을 받는 근로자들은 회사에 남을 확률이 두 배 더 높다는 점을 시사했다. 크래프트 식품은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교대 업무 시간을 바꾸고, 업무를 공유하며, 휴가를 하루씩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혹은 카리나 마르티네즈의 어머니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실비아 씨는 카리나 자매가 엄마를 보지 못한다고 항의하자 주택을 청소하면서 매주 80시간씩 일하던 생활을 청산했다. 실비아 씨는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주말을 쉬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는 조금 더 힘들어졌다. 요즘 두 모녀는 여성 활동 연대에서 활동한다. 이 여성 단체는 캘리포니아의 주택 근로자 권리 법안 상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법안은 시간외 수당과 근로자 상여금, 업무시간 외 연락 금지, 도우미의 음식을 조리할 권리를 보장한다. 2010년에 뉴욕에서는 유사한 법안이 통과되어 가정부와 유모, 간병인들이 다른 근로자들이 받는 고용인 보호 혜택 중 일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업률이 높고 경제 전망이 너무 불확실할 때는 한 쪽 성별의 근로자들이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우리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면, 남자든 여자든 트랜스젠더든 신경 쓰지 못하죠. 계속해서 거대한 문제를 안고 있을 테니까요.” 미국 진보 센터의 부셰이 씨가 근로자 생활 향상 측면에 대해 한 말이다.

여성의 진출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동반하는 국가들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인재 혁신 센터의 휴렛 씨는 인도와 브라질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압도하는 현상이 기업의 임원 위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팽창하고 있을 때 사람들을 꼭대기로 끌어올리기는 더 쉽죠.” 더하여 인재에 대한 갈망은 공격적인 정책을 낳았다. 예를 들어, 능력 있는 여성을 데려오거나 승진시키지 않는 관리자의 보너스 삭감과 같은 정책이다.

미국에서 고용 구조는 사회적인 역할 변화에 아직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역할이 고용 구조 변화에 맞추지 못하기도 매한가지다.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들은 진출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이들이 일자리가 늘고 있는 전통적인 여성영역들에 적응하려는 경향도 지금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편, 여성들의 경제적 책임 증가는 가정에서의 바람 및 기대와 상충한다.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들은 전반적으로는 훌륭하죠. 여성과 남성이 더 많은 선택권과 선택 안을 갖는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겪는 불평등과 갈수록 빨라지는 삶의 속도를 형성하는 방식에서 말입니다.” 역사학자 쿤츠 씨의 말이다.

더 단순했던 옛 시절에 대해 어느 정도 향수가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남자들에게 의지했던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쿤츠 씨는 어떤 사람들은 업무 정책과 사회 관습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 보다 성별 에 대한 관점에서 어쩌면 우리가 너무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고 지금 상황에 대응하려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돌아갈 일은 없다.

 

필자는 Salon.com 필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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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Sources(영>한) 2012. 4. 1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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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XT ECONOMY: COVER STORY

Going for the Gold, Getting the Silver. Still.

Women are advancing in the job market in surging fields that don’t pay all that well, and they too often stall before reaching the top.

Updated: March 15, 2012 | 9:16 p.m. 
March 9, 2012 | 3:19 p.m.

At 19 years old, Karina Martinez has good reason to believe that her life will prove less of a struggle than her mother’s has been. Her mother, Sylvia, now 47, who works as a housecleaner in Oakland, Calif., labored seven days a week, 11 hours a day, to raise Karina and her 8-year-old sister without a husband’s help. But the Great Recession brought harder times: As Sylvia’s clients cut back, her weekly earnings tumbled from a pre-slump peak of $1,000 to $300 to $400. She and her daughters have had to spend nights in a shelter when she’s been unable to pay their $850 rent.

Karina’s prospects look rosier. She is enrolled in Laney College, a community college in Oakland, and hopes to transfer to a four-year university. Her goal is to attend graduate school and become a psychologist. She wants to support herself by herself, even if she doesn’t marry—which she may not do. Her father was abusive, and Karina implored her mother five years ago to leave him, which she did. Her father, intermittently employed as a mechanic, rarely contributes anymore to the family’s support. “Not all men are the same,” Karina said, “but after seeing the experience that my mom had with my dad …”

Forty years after women began entering the labor market in full force, it’s less about a war between the sexes and more about a polarized landscape in which low-income men are falling behind and education is helping women advance—though only so far.

For Karina Martinez, college is the surest way out of poverty. She’s among the legions of women who are trying to better their lives through higher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women earned 62 percent of associate degrees, 57 percent of bachelor’s degrees, 60 percent of all master’s degrees, and half of Ph.D.s awarded in the 2008-09 academic year. Psychology, in particularly, is attractive to women, who commonly account for 80 percent of undergraduate psychology majors and earn 76 percent of the field’s doctorates.

Some women have always worked outside the home, especially women of color, such as Karina Martinez’s mother and others who work in other people’s homes. But since the 1970s, working women have increased their ranks and the types of jobs they hold; they are now more likely to work after marriage and motherhood. In 1975, half of all mothers with children under 18 were in the workforce, according to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ociologist Arlie Hochschild; by 2009, the proportion had risen to nearly three-fourths. Heather Boushey, senior economist at the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a liberal think tank, has noted that the mother is the primary breadwinner in two-fifths of American families; in a fifth of all families, a single mother is the sole breadwinner.

The gender gap in pay is no longer narrowing, because “we did the easy stuff first.”

If it looks like women’s prospects are rising, relative to the men, it’s not only because women are moving ahead but also because the outlook has dimmed for many men, especially those who have only a high school education. The financial return from a college education “is as high as it’s ever been,” said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economist David Autor. “There are fewer and fewer opportunities for people who don’t have some postsecondary education. It doesn’t have to be a college degree—you just have to invest in a set of skills, like being a plumber or an electrician.”

Women would seem to have the edge, but consider this: Although economists say that the job growth in coming decades will concentrate in fields that women dominate, the sectors that are surging—health care and service as well as education—often don’t pay all that well. If Karina Martinez fulfills her dream of becoming a psychologist, for example, she’ll be entering a relatively low-paying field. Indeed, as both the compensation and social status of psychology have sagged, women have come to dominate the field, and men have gone elsewhere.

In every field of work and at every level of education, women are still paid less than men. The wage gap is the widest for Latinas, who earn 60 cents for every dollar a white man makes. According to the Bureau of Labor Statistics, even among maids and housekeepers, women earn only 83 percent as much as the few men in the field.

That’s the macro view; now consider the micro. When it takes two incomes to assure a family’s middle-class comfort, women’s wages are more crucial than ever. But women still put in the most hours in caring for children and the home. More and more, employers are being asked not only to pay a living wage but also to provide a workplace environment that adapts to family life. Now, as ever, the gender wars extend from the battleground of the workplace and into the home.

THOSE POOR, POOR MEN

“Is there an equivalent to Title IX for men?” Time magazine quipped in 2010, referring to the law that outlaws sex discrimination in any federally subsidized educational activity. (The answer is yes: Title IX, which is gender-neutral.) The occasion for the question was a widely circulated study, conducted by strategy consultancy Reach Advisors, that found young women were outearning men—by 8 percent—in 147 of the nation’s 150 biggest cities in 2008.

Maybe it’s an eagerness for a fresh narrative after decades of news about gender inequality and the gap in wages that explains such triumphalism about women’s rising success in the job market. The study’s findings, however, applied only to unmarried and childless urban women, who tend to earn more than their male peers at the outset because they’re significantly likelier to have finished college. In 1979, the average college graduate made an hourly wage roughly 50 percent higher than that of a high school graduate—and by 2009, nearly twice as much.

What’s happening, it seems, isn’t so much that women are vaulting ahead than that less-educated men are falling behind. The days are pretty much gone when a man with a high school degree could expect to support a family by, say, working in a factory at a union wage. Roughly half of the narrowing of the wage gap starting in the 1980s was due to men’s declining real wages, according to the Washington-based Institute for Women’s Policy Research. Since then, men’s average wages have stagnated more than women’s (in part because women’s wages were lower to start with). For men who lack a college degree, the cratering of economic opportunity is a problem with no end in sight.

Indeed, the main reason that families have seen any growth in income in recent decades is that women went to work. According to economist Boushey, families with dual earners saw their inflation-adjusted incomes rise by 37 percent from 1973 to 2006—not much more than the almost 26 percent growth for women supporting a family on their own. “The reality is that we’ve spent decades decimating the middle class and, in many ways, hollowing out opportunities for men without college degrees,” Boushey said. “And then, 40 years later, people are scratching their heads [saying], ‘I don’t understand why those men whose dads earned $30 an hour aren’t happy working for $12 an hour. Why don’t they just get off their butts and get a job?’ ”

It used to be women who had to marry for financial security; now it’s men who stand to gain the most. According to MIT’s Autor, male high school dropouts were less likely to be married than men who had at least started college—by 17 percent among whites and 20 percent among blacks. “Falling male earnings and rising male joblessness and incarceration make those guys not worth marrying,” he said. “It’s just another mouth to feed.” (See First Comes Love, Then Comes … Well, It Depends on Your Schooling.)

Men’s sagging fortunes were compounded at the peak of the recession, when headlines warned of a “mancession,” in which men in hard-hit sectors such as construction were losing while higher-earning women gained. Recessions often narrow the gender gap in pay, the Institute for Women’s Policy Research has found, because volatile bonus and overtime payments make up a greater proportion of men’s wages. But the gender difference was small: Women’s median real earnings didn’t rise at all during 2010, while men’s pay sank by almost 1 percent. And the effect turned out to be temporary. Male-dominated fields have recovered more quickly, while cutbacks in state and local government payrolls have put women disproportionately out of work.

For at least a few decades more, women at every level of education and income can look forward to earning less than men in comparable jobs. If the gender gap in pay keeps shrinking by the same rate as it has since 1960, the women’s research institute has calculated, it wouldn’t disappear until 2056. Autor, however, is more optimistic that women will keep gaining on men. “Women will be earning more, on average, than men in the U.S. labor market,” he predicted, “sometime in the next 20 years.”

ON THE LADDER, STALLED

Some of the persistent discrepancies in pay can be attributed to choices that women make—Karina Martinez’s decision, for instance, to pursue psychology. “Even though the fastest growing careers are in traditionally female-dominated fields such as health care, the highest-paying careers remain in male-dominated fields, including engineering, technology, and other science-related industries and services—all fields in which women still lag very far behind men in educational degree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law professor Mary Ann Mason, an expert in family economics, has noted. (See Women’s Successes in School … Bleed Away in Their Paychecks.)

Women (and men) who majored in “male-dominated” subjects outearn those who chose “female-dominated” or “mixed-gender” majors, a 2007 study by the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 found. Home-health aides, who are mainly women, will see their ranks grow by half by 2018, but they’re paid a median salary of just $20,460. Elementary school teachers need a bachelor’s degree or more, but earn median wages of only $49,330. The fastest-growing fields that pay generously usually require “male” majors—such as biomedical engineering ($77,400 median salary, projected job growth of 72 percent by 2018) and network-systems and data-communication analysis ($71,100, 53 percent).

There’s little reason to think that these disparities will change anytime soon. According to the Institute for Women’s Policy Research, a plunge in the sex-segregation of the civilian labor force started in 1972, as women entered previously male-dominated fields, but has mostly stalled since 1996. Among the youngest workers, recent data suggest, the trend toward integration by gender has actually reversed. Even choosing a “male” major often isn’t enough for women to earn equal pay. Given the same education, grades, and background, the group’s analysis concluded, a man will earn 5 percent more in the first year after graduation. And then the gap widens—a decade later, to 12 percent. Over 40 years, the disparity amounts to $434,000, according to a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study.

Nearer the top of the corporate ladder, women seem stuck. Even in a well-paying field such as banking and finance, women accounted for half of all managers in 2009 but only a quarter of those who earned at least $100,000 a year, the Census Bureau’s American Community Survey found. The tiny proportion of women serving as CEOs of big businesses—3.6 percent of the Fortune 500 and Fortune 1,000—has barely budged. (See When Women Rule.) In executive offices and on corporate boards, women “are no further along” than they were six years ago, according to Catalyst,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that advocates for women in business.

The stall in women’s careers “begins to hit when they are in middle management, trying to get to the top,” said economist Sylvia Ann Hewlett, founder of the Center for Talent Innovation based in New York City. “Once you hit 38, you see it.”

Women’s breaks from the workforce to bear children, economists say, don’t fully account for the gap in pay. Another explanation that’s been offered in recent years is that women don’t ask to get ahead—that the way they’ve been socialized inhibits them from showing the aggression needed to advance. But a study that Catalyst issued last fall found otherwise. Comparing “high-potential women” with their male counterparts, it found that women were, in fact, asking, but that their strategies “had little bearing” on how quickly they advanced to positions of leadership. Conversely, the men who tried hardest to advance succeeded in doing so, compared with less-ambitious men. For business-school graduates, the gap in pay between men and women started at $4,600 for the first year out of school and grew to $31,258 by mid-career. Women who stayed at the same company earned $53,472 less than those who changed jobs at least twice by mid-career; among men, the difference was $13,743. Cata-lyst’s conclusion: Men are paid for their potential; women, for their proven performance.

“Women are not seen as leaders, they’re not groomed for it, and they’re not chosen, in spite of their extraordinary track record, qualifications, and experience,” Hewlett said.

Educational prowess takes women only so far. “Every darn decade, we get the same life-cycle earnings picture,” said Deborah Figart, director of the New Jersey-based Stockton Center for Economic and Financial Literacy. The penalty for marriage and motherhood in addition to the fact that women take lower-paying jobs within an organization, she said, damages the opportunities they’re afforded over their careers.

Why is the gender gap in pay no longer narrowing? As women expanded into the workforce, Figart explained, “We did the easy stuff first.” Women went to college, had blatant discrimination declared illegal, and started to address the tensions between family and work. Progress will get only harder from here.

BALANCING WORK AND LIFE

When companies started to offer flexible work programs to employees in the 1980s, they surely didn’t have Ian Campbell in mind. Unlike the earlier generation of working mothers who added “work-life balance” to the economic lexicon, Campbell is a 30-year-old man without a spouse or children. But when he graduates this spring from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s Wharton School and rejoins the major consulting firm that paid his way through, he’ll take advantage of what’s still known there as the Women’s Initiative—working 80 percent of the time for 80 percent of the pay.

“I have worked 80 hours in a week, but I don’t think I could physically or mentally sustain it in the long term,” he said. “Probably down the line, I won’t care if I had a huge bonus at [age] 30, but I will care if I built a relationship with someone.”

If Campbell does have children, he expects to consider staying home with them, like his mother did in raising him and his two siblings while his father worked long hours as a physician in Nashville. He doesn’t assume that the mother of his children would stay home. In his social circle, his friends pretty much assume that both partners will go to work. “People find work rewarding,” Campbell said. Still, many of his Wharton buddies tell him they’re envious of his plan to find balance, even if it comes at the expense of long-term financial gain.

In these days of and unsettled gender roles, the connections between office and home keep getting more tangled. “Women’s relative position has changed,” Boston University economist Claudia Olivetti pointed out, “but there is this interaction between the way in which households are organized and specialized and what’s going on in the labor market.” For example, if two lawyers marry and they want to have children, she explained, the usual—and probably rational—assumption is that the woman will take more time off, despite the professional penalties, because the man is more likely to advance and become a partner. This creates both the incentive and the financial capability for the woman to scale back.

Even if men are, well, evolving, achieving a balance between work and family has remained harder for women. They face a profoundly different calculation in finding a comfortable role in the economy than men do. This entails more than the physical demands of childbearing. Even in families where both parents work outside the home, women continue to take on most of the domestic chores. Men have more than doubled the hours they devote to child and household care since 1965, but it amounts to barely half as much time as mothers spend, according to demographer Suzanne Bianchi. The rare stay-at-home dads still spend less time on average on domestic tasks and child care, she said, than the working mothers they live with.

Some progress, however, is apparent. In 1989, sociologist Hochschild found that working mothers put in an extra four weeks a year in domestic duties—The Second Shift, as she titled her book—compared with their husbands. More recent data show a difference in at-home work of two weeks a year. A quarter-century “didn’t rid women of an extra shift,” Hochschild reflected, “but it did cut the length of it in half.”

For years, it’s been professionals and executives in the forefront of the discussion about trying to achieve a happy and productive balance between family and work. As Ian Campbell knows, this doesn’t appeal only to women. In a 2005 survey of Fortune 500 companies, 84 percent of male executives said they wanted “job options that let them realize their professional aspirations while having more time for things outside work”; more than half said they’d take less money to achieve it. “Men now report more work-family conflict than women,” said historian Stephanie Coontz, author of A Strange Stirring: The Feminine Mystique and American Women at the Dawn of the 1960s. “That shows that many of them are looking to develop a more-integrated identity, not just as workers but as partners and family members.”

A desire for flexibility in balancing family and work cuts across not only gender but also socioeconomic lines. A 2004 study by Boston College’s Center for Work and Family identified several programs by major companies that hope to reduce turnover among lower-wage employees. A survey at the Bank of America suggested that employees who received a company subsidy for child-care expenses were twice as likely to stay. Kraft Foods has started to offer its manufacturing workers the chance to swap shifts, share jobs, and take single-day vacations.

Or think of Karina Martinez’s mother. Sylvia stopped working 80-hour weeks cleaning houses after Karina and her sister protested that they never saw her; she started to take weekends off for family time and struggled some more financially. Now, both mother and daughter are active with Mujeres Unidas y Activas, a women’s group that is pushing for a domestic workers bill of rights in California assuring the right to overtime pay, to worker’s compensation, to sleep uninterruptedly, and to cook one’s own food. Similar legislation that passed in New York in 2010 gave housekeepers, nannies, and home-health aides some of the labor protections that other workers receive.

Of course, when unemployment is high and the economic future looks so uncertain, workers of either gender wield only so much clout. “If we don’t create jobs,” said Boushey of the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I don’t care if you’re male, female, or transgender—we’re going to continue to have an enormous challenge” in improving workers’ lives.

It isn’t a coincidence that the countries where women are advancing the fastest are those with rapid economic growth. The Center for Talent Innovation’s Hewlett pointed out that in India and Brazil, “women are leapfrogging men,” even in the upper reaches of the corporate world. “It’s easier to absorb people up top, because you’re expanding,” she noted. And the desire for talent has resulted in aggressive policies—say, docking the bonuses of managers who fail to attract and promote capable women.

In the United States, the structure of employment hasn’t caught up yet to the changes in social roles—and vice versa. Less-educated men have fewer chances to get ahead and, so far, little inclination to adapt to the traditionally “female” trades where jobs are growing. Meanwhile, women’s growing economic responsibilities bump up against the desires or expectations at home. “Things that people agree are wonderful in the abstract—that women and men have more choices and options—run into these structural barriers,” historian Coontz said, in how “we organize our work, economic inequality, and the increasing speed-up of life.”

No wonder there’s some nostalgia for the simpler days of yore, even if they weren’t so simple for women who depended economically on men. “I think some people respond to this by saying … maybe we’ve gone too far at the gender level,” Coontz said, rather than by saying, “we have to change work policies and social practices.” But whatever they say, there’s no turning back.

The author is a staff writer at Sal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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