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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8 :: 영화 <Dixie Chicks>
Views 2012. 3. 28. 22:51

Olleh TV now 앱에서 무료 영화들을 '재미있겠다' 싶은 순으로 하나씩 보고 있다. 요즘 보는 영화는 재미로 따지면 2-3급이라 생각했던 영화들이다.


작은 크기로 본 <딕시 칙스> 포스터에는 부시 대통령 사진이 오른 쪽 아래 있고, 가운데에 세 백인 여성이 나체로 횃불(?) 위에 앉아 있는 형상의 사진이 있었다. 예전에 <화이트 칙스>라는 저질 코메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비슷한 류의 "칙스"로 끝나는 영화인가 보다 생각했다. Dixie Chicks라는 컨트리 음악 밴드가 있는 지 모르고.. ㅎ


사실, 딕시 칙스 음악을 못들어 본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뮤지컬 미드 <글리>에 단골로 출연하는 기네스 펠트로가 딕시 칙스의 '랜드슬라이드(Landslide)'를 부르는 모습에 반해서 찾아 들어보기도 했었는데.. 스펠링이 와닿지 않아서인지 밴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저질 코메디 영화로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다가 줄거리를 봤는데 줄거리를 봐서는 코메디 소재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결국 오늘 저녁에 저녁거리를 갖다 놓고 줄거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였다. 딕시 칙스라는 실제 밴드가 출연해서 그들이 2003년부터 2006-7년까지 겪은 내용을 다뤘다. 일단 보는 내내 딕시 칙스의 아름다운 화음과 리드 보컬의 파워와 멜로디에 감동했다. 그 감동적인 아름다움과 내용은 대조적이었다. 내용은 추악한 정치, 미디어, 미디어에 선동된 사람들에 의해 힘없는 연예인이 폭행당하는 현상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2003년 영국 런던 콘서트였는데, 당시 밴드는 앨범 발매 기념으로 영국, 호주, 미국 전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할 때였고, 이라크 전 발발 직전이었다. 런던 콘서트는 투어의 첫 공연이었다. 여기서 밴드 리드 싱어인 나탈리는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이 밴드가 1992년 데뷔해서 데뷔 앨범부터 최정상급 인기를 누린 컨트리 음악 밴드로서 10년 이상 정치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배경과 공연장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런 발언은 충분히 농담으로 여기고 넘어갈 만 했다. 그런데 승냥이 떼 같은 언론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라크 전 발발 직전에 나탈리가 말한 문장은 문장 그대로 봤을 때 충분히 반발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고, 이들의 음악 장르가 보수파가 좋아하는 컨트리 음악이라는 점을 볼 때 그 영향력은 엄청날 수 있었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고, 결과적으로 이 밴드는 최정상에서 수직 하강해야 했다. 


영화는 2003년 런던 콘서트부터, 그리고 2006년 재기 앨범을 내는 과정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멤버 세 명이 어떻게 밴드활동과 개인생활을 조화롭게 이끄는지, 그들이 2003년 사건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단체적으로 어떤 의견을 갖고 대응하는지를 침착하게 보여주면서...


나탈리의 리드 보컬이 정말 강력해서 다른 두 멤버의 화음이 없으면 락가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기에 원래 장르 음악이라고 하면 락부터 좋아했던 나는 영화 내내 이들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강한 리드 보컬에 비해 아기를 쓰다듬는 엄마 손길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화음은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며 듣는 이를 위로했다. 내가 이들의 음악에서 위로받고 있었던 실체는 미국의 치부를 폭로하는 영화에서 내내 느꼈던 열등감이었다. 미국은 '자유의 상징'이라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 *매카시 상원위원 사건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 언론의 자유 등.. 자유의 상징이라는 표어가 자칭이든 자타공인이든 개인적으로 이들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고등학교 때 대학 초년 때인가 cnn에서 자정 즈음 방송하는 토크쇼 끝부분에서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을 대놓고 풍자 소재로 놓고 (칠판에 대통령 이름과 캐리커쳐가 붙어있었다.) 비웃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 기억난다. 

*매카시 상원의원 사건은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영화 <굿나잇&굿럭>에서 다뤘다.


아무튼, 이렇게 안그래도 부럽던 미국의 언론 자유가 위협 받는 모습을 그린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한국의 언론은 토대부터 다르다'는 점이었다. 영화에서 나온 표현으로 리그(league) 자체가 다르다. 굳이 지금 대통령이 인권이나 언론 자유를 훨씬 더 낙후시키기 전에도 정권을 쥔 한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뿌리채 흔들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열등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공영 방송국, 준공영 방송국, 민영 방송국 할 것 없이 이 나라에 영향력이 큰 방송 3사가 모두 파업 중인 영향도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더라도 객관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겪는 충격 정도만 다를 뿐이다.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방송과 언론의 힘이 영화에서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영리만을 추구하여 힘없는 개인의 상황을 이용했을 때, 그 방송사나 언론사는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도 이미 겪지 않았나. 민족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전 대통령을 퇴임 1-2년 만에 자살하게 한 사례말이다. <딕시 칙스>처럼 용감하게 재기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영화로 만들면 훨씬 더 우울해지겠지만...

posted by regulus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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