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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2 ::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 2012.06.11 :: 물리학과 철학은 어울릴 수 있는가?(NYT)
- 2012.06.11 :: Can Physics and Philosophy Get Along?
- 2012.05.09 :: 진정한 혁신(NYT)
- 2012.05.09 :: True Innovation
- 2012.03.21 :: 최신 재무 건전성 평가 (NYT)
- 2012.03.21 :: Latest Stress Tests
- 2012.02.16 :: 디지털 도난 시대의 가벼운 여행 (NYT)
- 2012.02.16 :: Traveling Light in a Time of Digital Thievery 2
뉴욕타임즈
사설
2012. 5. 6.
실행자와 이론가
제이슨 스탠리
스톤은 동시대 철학자들이 시사적인 주제나 불변하는 주제, 모두에 대해 논하기 위한 공간이다.
태그: 지식, 철학
우리 사회는 이론 지식과 실행 능력 사이에 놓인 가상의 분리 선에 기반한 계층으로 나뉜다. 대학 교수는 텔레비전에서 지루하게 떠들고, 배관 기술자는 뜬구름 잡는 상아탑 지식인들에 대해 화를 낸다. 대학 교수와 배관 기술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우리들 각자의 지성에 대한 사고 방식으로 반영된다. 인간은 이론가이자 실행자이다. 이런 활동들이 개별적인 능력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은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생각할 때는 세상의 진실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행동할 때는 다양한 행동 방식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들이 분리된 인식 능력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즉,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은 다르다. 대학 교수의 세계는 아마 배관 기술자의 세계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정신 능력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는 지식이 순수하게 이론적인, 진실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체득하지” 못한다. 배관 기술자는 정치 체계와 경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 복잡한 행동 능력은 그런 지식에 대한 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일을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친숙하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자동차 수리, 자전거 타기, 점프 슛 하기, 아기 돌보기, 리조또 요리 같은 활동을 실행 지식을 이행하는 것으로 즉각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수학 명제 증명, 물리학 가설 검증, 철학 논거 정립하기를 진리에 대한 지식 운용 능력을 이행하는 것으로 구분 지으려 한다. 이론적 사고에 능한 만큼 실용적인 일은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많이 쓰이는 대중문화 소재이다. 실행 기술은 지적 지식의 양상이 아니라는 일반적 생각은 현대 철학에서도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전례를 찾자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분법이 제시하는 모형에 따르면, 이론 지식의 이행은 연이은 지식의 행동으로 이끄는 해당 이론 가설이나 규칙과 관련된 능동적인 사고를 수반한다. 체스 선수가 체스의 첫 수(手)에 대해 배운 지시사항에 따르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조적으로 실행 지식은 심사숙고 없이 자동적으로 이행된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는 공을 받아 치기 전에, 지침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는 공을 받아 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자동적으로 실행한다. 또한 이론 지식의 이행이 가설이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행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침과 관련 있다는 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즉, 이론 지식을 이행하는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지침서를 갖고 있다. 반대로 테니스 기술을 구성하는 일부 요령은 어떤 지침서로도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응과 관련 있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가 잘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지침서를 따르는 일과 무관해 보이는 행동인 새로운 서브에 대해 경기를 조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활동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는 적성이 진리에 대한 지식 습득에 대한 적성과 다르다는 생각은 타인과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 아이가 신체 활동에 재능을 보이면서 수학에 대한 흥미가 초반에 부족하다면, 아이가 실용적 활동에는 적성이 있으나 지적 추구에는 적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행자들과 이론가들 사이에 있음직한 구분 선을 일단 그으려고 하기 시작하면 틈이 나타난다. 운동 기술을 익히는 사람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그러나 과학 가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도 학습의 일례이다. (모두는 아니라도) 세계의 많은 언어에서 같은 동사가 이론 지식뿐 아니라 실행 지식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영어로 “know”는 불어로 “savoir”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지식에 대한 어떠한 실행에 대해 생각해보더라도, 실용적이든 이론적이든 간에 솔직히 말해서 실행 능력과 지적 능력을 둘 다 사용해야 하는 특성을 갖는 듯 보인다. 수학자의 명제에 대한 증명은 이론 지식의 실행에 대한 이상적인 예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능숙하게 계산하기 위한 수학자의 훈련은 테니스 선수의 훈련처럼 수학자가 수학적 현실을 탐험할 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하는 데 능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이행하는 일에는 능동적 사고도 필요 없다. 필자는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킨다는 지식을 일말의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이행한다. 다른 면을 보면, 단순히 실행 지식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예가 명백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습득된다. 사람들은 요리책의 조리법을 읽으면서 리조또 요리법을 배울 수 있고 종종 그렇게 하니 말이다.
아마 실행 지식을 이론 지식과 구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는 말로 그 지식을 표현할 수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배울 때는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을 알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표현하지는 못할 수 있다. 반면 워싱턴이 미국 수도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를 구분한다고 해서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 사이에 어떤 임의적 구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필자는 암호가 415XH라는 점을 알아도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 있다. 단지 번호판이 주어질 때 번호 키를 누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 지식은 그러니까 필자의 손가락에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하는 점이 이론 지식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실행 방법을 알고 있는 누구든지 그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기를 웃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결국 “이게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를 웃기는 동안에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른 곳에서는 더 길게) 실행 지식과 진리에 대한 지식 사이에서 임의적인 구분을 무턱대고 지으려 한다면 실패한다는 점을 논했다. 배관 기술자나 전기 기사의 활동은 과학자나 역사가의 최신 기사들과 같은 종류의 지능에 대한 표현이다. 즉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 역학에는 능숙한 반면 철학에는 무능할 수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이론 물리학에 능하지만 철학에 무능한 사람도 있다는 점 또한 맞다. 능숙하고 능숙하지 않은 것 사이 구분은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과 관련이 없다. 학생 대출을 합리적으로 받아내기만 위해서라면 우리는 또한 많고도 아마 더 복잡한 사실을 익혀야 하는 전문적인 직업과 더 쉽게 잘할 수 있는 직업 간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병렬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연장선 상에 있는 구별이다.
우리 사회에는 실용적인 일과 이론적 사고 사이에 잘못된 이분법으로 세워진 장애물들이 있다. 누군가 자동차 수리에 대한 재능을 일찍 개발한다면 자신이 문학비평이나 명제 입증에는 소질이 없을 거라고 잘못 가정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로부터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문학비평이나 수학에 대해 잠재적으로 중요한 공로자를 빼앗는 셈이다. 사회의 보상 체계 또한 이론적 성격이라고 판단되는 것에 따르는 희생과 비용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앞선 상황을 가정 한다. 가상의 구분은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기능한다. 자동차 수리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을 평가할 만한 적절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토론으로부터 이질감을 느껴서 자신의 소외감이 선전 요원들의 분노에 찬 수사법으로 반영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실행자와 이론가 사이 구분은 사회를 여러 갈래로 고착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 구분은 소외시키고 분열시킨다. 그러면 그것이 단지 소설이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제이슨 스탠리는 루트거 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 권의 저서, “지식과 실행 이익”, “상황 언어”, “요령”의 저자이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글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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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ator
MAY 6, 2012, 5:00 PM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The Stone is a forum for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issues both timely and timeless.
Tags: knowledge, Philosophy
120614ThePracticalNTheoretical-NYT.docx
Our society is divided into castes based upon a supposed division between theoretical knowledge and practical skill. The college professor holds forth on television, as the plumber fumes about detached ivory tower intellectuals. The felt distinction between the college professor and the plumber is reflected in how we think about our own minds. Humans are thinkers, and humans are doers. There is a natural temptation to view these activities as requiring distinct capacities. When we reflect, we are guided by our knowledge of truths about the world. By contrast, when we act, we are guided by our knowledge of how to perform various actions. If these are distinct cognitive capacities, then knowing how to do something is not knowledge of a fact — that is, there is a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knowledge. The world of the college professor is supposedly so different than the world of the plumber because they are viewed as employing fundamentally different mental capacities in their daily lives. The college professor doesn’t “get it,” because her knowledge is purely theoretical, knowledge of truths. The plumber isn’t qualified to reason about a political system or the economy because skill in complex action is not an exercise of such knowledge.
The cliché of the learned professor inept in practical tasks is just as familiar as that of the dumb jock.
Most of us are inclined immediately to classify activities like repairing a car, riding a bicycle, hitting a jump shot, taking care of a baby or cooking a risotto as exercises of practical knowledge. And we are inclined to classify proving a theorem in algebra, testing a hypothesis in physics and constructing an argument in philosophy as exercises of the capacity to operate with knowledge of truths. The cliché of the learned professor, as inept in practical tasks as he is skilled in theoretical reasoning, is just as much a leitmotif of popular culture as that of the dumb jock. The folk idea that skill at action is not a manifestation of intellectual knowledge is also entrenched in contemporary philosophy, though it has antecedents dating back to the ancients.
According to the model suggested by this supposed dichotomy, exercises of theoretical knowledge involve active reflection, engagement with the propositions or rules of the theory in question that guides the subsequent exercise of the knowledge. Think of the chess player following an instruction she has learned for an opening move in chess. In contrast, practical knowledge is exercised automatically and without reflection. The skilled tennis player does not reflect on instructions before returning a volley — she exercises her knowledge of how to return a volley automatically. Additionally, the fact that exercises of theoretical knowledge are guided by propositions or rules seems to entail that they involve instructions that are universally applicable — the person acting on theoretical knowledge has an instruction booklet, which she reflects upon before acting. In contrast, part of the skill that constitutes skill at tennis involves reacting to situations for which no instruction manual can prepare you. The skilled tennis player is skilled in part because she knows how to adjust her game to a novel serve, behavior that does not seem consistent with following a rule book.
The thought that aptitude at acquiring skills at practical activities is different from aptitude at acquiring knowledge of truths affects our most fundamental interactions with others. When our child exhibits skill at a physical activity, and and an initial lack of interest in mathematics, we might suppose that the child has aptitude for practical activities but not intellectual pursuits (and vice versa).
But once one begins to bear down upon the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cracks appear. When one acquires a practical skill, one learns how to do something. But when one acquires knowledge of a scientific proposition, that too is an instance of learning. In many (though not all) of the world’s languages, the same verb is used for practical as well as theoretical knowledge (for example, “know” in English, “savoir” in French). More important, when one reflects upon any exercise of knowledge, whether practical or theoretical, it appears to have the characteristics that would naïvely be ascribed to the exercise of both practical and intellectual capacities. A mathematician’s proof of a theorem is the ideal example of the exercise of theoretical knowledge. Yet in order to count as skilled at math, the mathematician’s training — like that of the tennis player — must render her adept in reacting to novel difficulties she may encounter in navigating mathematical reality. Nor does exercising one’s knowledge of truths require active reflection. I routinely exercise my knowledge that one operates an elevator by depressing a button, without giving the slightest thought to the matter. From the other direction, stock examples of supposedly merely practical knowledge are acquired in apparently theoretical ways. People can and often do learn how to cook a risotto by reading recipes in cookbooks.
Perhaps one way to distinguish practical knowledge and theoretical knowledge is by talking. When we acquire knowledge of how to do something, we may not be able to express our knowledge in words. But when we acquire knowledge of a truth, we are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Somebody may know how to make a baby laugh but not be able to express how they do it. But if someone knows that Washington is the capital of the United States, they are presumably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what we are able to express in words and what we are unable to so express does not track any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knowledge. I may know that the secret password is 415XH, but I may not be able to express this knowledge in words — I may only be able to press the keys when given a keypad (the knowledge resides, so to speak, in my fingers). One might then think that being able to express something in words is not necessary for theoretical knowledge. Conversely, one may think that anyone who knows how to do something is able to express that knowledge in words. After all, someone who knows how to make a baby laugh can, when asked how to do it, say, “This is the way to make a baby laugh,” while he makes a baby laugh.
I have argued here (and at length elsewhere) that once one bears down on the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knowledge and knowledge of truths, it breaks down. The plumber’s or electrician’s activities are a manifestation of the same kind of intelligence as the scientist’s or historian’s latest articles — knowledge of truths. It is true that someone might be adept at car mechanics and hopeless at philosophy. But it is also true that someone might be adept at theoretical physics and hopeless at philosophy. Distinctions between what one is adept at and what one is not adept at do not correlate with the folk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pursuits. If only to appropriate student loans rationally, we must also recognize distinctions between professions, the mastery of which requires learning many and perhaps more complex truths, and professions that one can master more easily. But these are distinctions along a continuum, rather than distinctions in kind, as the folk distinction between practical and theoretical pursuits is intended to be.
There are barriers in our society erected by a false dichotomy between practical work and theoretical reflection. If someone develops early on a skill at repairing cars, she may falsely assume that she will not be adept at literary analysis or theorem proving. This robs not only her of opportunities but also society of a potentially important contributor to literary analysis or mathematics. The reward structure of society also assumes it, reflected in both the pay and the cost of pursuing what are thought of as the theoretical pursuits. The supposed distinction also operates on an everyday level. If one spends one’s time repairing cars, one may think that one does not have the appropriate capacities to evaluate the arguments of economic “experts” on television. One might then feel alienated from such discussions and find one’s sense of alienation reflected in the angry rhetoric of propagandist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ractical and the theoretical is used to warehouse society into groups. It alienates and divides. It is fortunate, then, that it is nothing more than a fiction.
Jason Stanley is professor of philosophy at Rutgers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three books for Oxford University Press, “Knowledge and Practical Interests,” “Language in Context” and “Know How.” More work can be found at his Web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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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3물리학과_철학은_어울릴_수_있는가-NYT23.pdf
뉴욕타임즈
사설
2012. 05. 10
물리학과 철학은 어울릴 수 있는가?
개리 거팅 씀
스톤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시사적인 주제나 불변하는 주제에 대해 논하기 위한 공간이다.
물리학자들은 최근 철학자들을 힘든 시기로 몰아넣어왔다. 스티븐 호킹은 작년 한 연설에서 철학자들이 과학과 보조를 맞추지 못해왔기 때문에 철학은 “죽었다”고 주장했다. 더 최근에는 로렌스 크라우스가 저서인 “무(無)로부터의 우주: 왜 무(無)가 아닌 유(有)인가?”에서 “철학과 신학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우리 존재에 대한 정말 근본적인 질문들을 혼자 힘으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저명한 과학 철학자인 데이비드 알버트는 크라우스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폄하했다. “내가 보기에 ‘우주가 무(無)에서 출발했을 지도 모른다는 크라우스의 이 주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는 크라우스가 완전히 틀렸으며 그의 종교적, 철학적 비평가들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것이다.” 알버트의 이론 물리학 박사 학위를 고려하지 않은 크라우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알버트를 “바보 같은 철학자”라고 받아 쳤다. (크라우스는 최근에 쓴 과학적 미국인 기사에서 입장을 다소 누그러트리고 있다.)
크라우스의 실수: 과학 실험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 진리 결정 요인”이라는 믿음
필자는 토론 수준을 약간 높일 수 있을지 알아보려 한다. 다소 불쾌한 언사를 했지만 크라우스는 철학자들이 “근본적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데 공헌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인용한 “혼자 힘으로”라는 그의 말은 일반적인 자질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버트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과학 철학자들은 과학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그들의 학문에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물리학자와 철학자 모두의 감각을 통합하는 생각 한 줄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전체로서의 물질 (물리적) 우주에 연관성이 없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신의 존재를 옹호해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주는 무(無)에서 기원해야겠지만, 물질이 무(無)에서 발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한 한 가지 대응으로서 우주는 항상 존재해왔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발생은 일어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 현대 우주론으로 충분히 정립된 빅뱅 이론은 흔히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한다.)
크라우스는 이런 종류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가 말하는 이유는 그 주장의 효력이 “무(無)”의 의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주론적 맥락에서 “무(無)”의 의미는 과학이 그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바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 “무(無)”에 대한 한 가지 설득력 있는 과학적 의미는 “빈 공간”이다. 즉, 기초적인 분자가 없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 따르면 분자는 빈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주(즉, 모든 기초 분자와 그에 따라 이들이 형성하는 것들)는 무(無)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분자가 빈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빈 공간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분자가 없을 때조차 비어있는 공간에 물성(物性)을 줄 수 있는 불안정한 가상 구역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역은 “임의적” 분자 생산을 허용하는 법칙들로 지배된다. 알버트는 가상 구역이 분자가 발생하는 “어떤 물질”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크라우스는 수긍하지만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묶는 오랜 기간 탐구된 중력 양자 이론이 단순히 그 이론 법칙의 속성 상 빈 공간 그 자체의 자발적 생산을 허용할 진일보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無)에서 발생한 공간과 구역, 분자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알버트는 물리 법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물리 법칙들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데 그들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인내심을 발휘하는 크라우스에 따르면 “다원 우주”를 그럴 듯 하게 제시하는 또 다른 유망한 이론적 접근법이 있다. 즉, 고유한 자연 법칙을 갖는 자기 수용적, 비(非)상호적 우주들이 무한하게 속할 수 있는 집합체를 말한다. 사실 다원 우주는 당연히 가능한 모든 법칙 집합을 갖는 우주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속한 특정 우주 때문에 기능하는 법칙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론 알버트는 다원 우주 그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법칙으로 지배된다고 대응할 수 있다.
알버트는 어디에서나 자연 법칙이 존재하며, 이 법칙은 항상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 어떤 물리적인 “것” (분자, 구역 등) 에 적용된다고 결론 짓는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유(有)는 사실 무(無)에서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것은 알버트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진 경우처럼 보인다. “무(無)”라는 의미 쓰임에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절대적인 쓰임이 있다. 어떤 면에서 크라우스는 단지 고집스럽게 이런 사용법을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크라우스가 철학을 좀 더 안다면, 이런 절대적인 쓰임과 그에 따라 존재가 무(無)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많은 철학자들의 언급을 쉽게 인용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펼치는 주장에 대한 훌륭한 조사로서 로이 소렌슨의 스탠포드 백과사전 기사인 “무(無)”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가해성에 대한 많은 철학적 비판을 넘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존재는 무(無)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데 대한 강한 반대가 있어왔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흄은각각의 존재는 단순히 발생하지 않음, 즉 존재의 발생에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우주의 발생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주가 발생했다면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흄과 그의 동조자들은 우주의 원인에 대한 문제를 실증 과학에 맡겨두는 데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다.
크라우스는 “존재는 무(無)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철학에 호소할 수 있지만, 과학 실험을 그의 표현으로 세상에 대한 “궁극적 진리 결정 요인”이라고 단순히 가정함으로써 철학적 비판에 직면한다. 과학의 성공으로 인해 수준 높은 진리 탐색을 위한 실험적 방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진실을 과학적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해서 과학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만 다루기 때문에 인지 경험으로 전혀 알 수는 없는 어떤 존재, 예를 들면, 의식이나 도덕, 미(美), 신 같은 것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인지 경험을 넘어서는 존재는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적 실험이 아닌 철학적 논증이 필요할 것이다.
크라우스는 철학자들이 세상의 본성에 대한 문제들을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에 대해 당연히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이 없으면 그의 주장은 지식이 아닌 신뢰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개리 거팅은 노트르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노트르담 철학 평론의 편집자이다. 그는 최근작인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생각: 1960년 이후 프랑스 철학”의 저자이며, 스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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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3Can Physics and Philosopy get along-NYT.docx
MAY 10, 2012, 9:00 PM
Can Physics and Philosophy Get Along?
By GARY GUTTING
The Stone is a forum for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issues both timely and timeless.
Physicists have been giving philosophers a hard time lately. Stephen Hawking claimed in a speech last year that philosophy is “dead” because philosophers haven’t kept up with science. More recently, Lawrence Krauss, in his book, “A Universe From Nothing: Why There Is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has insisted that “philosophy and theology are incapable of addressing by themselves the truly fundamental questions that perplex us about our existence.” David Albert, a distinguished philosopher of science, dismissively reviewed Krauss’s book: “all there is to say about this [Krauss’s claim that the universe may have come from nothing], as far as I can see, is that Krauss is dead wrong and his religious and philosophical critics are absolutely right.” Krauss — ignoring Albert’s Ph.D. in theoretical physics — retorted in an interview that Albert is a “moronic philosopher.” (Krauss somewhat moderates his views in a recent Scientific American article.)
Krauss’ mistake: his belief that scientific experiment is the “ultimate arbiter of truth” about the world.
I’d like to see if I can raise the level of the discussion a bit. Despite some nasty asides, Krauss doesn’t deny that philosophers may have something to contribute to our understanding of “fundamental questions” (his “by themselves” in the above quotation is a typical qualification). And almost all philosophers of science — certainly Albert — would agree that an intimate knowledge of science is essential for their discipline. So it should be possible to at least start a line of thought that incorporates both the physicist’s and the philosopher’s sensibilities.
There is a long tradition of philosophers’ arguing for the existence of God on the grounds that the material (physical) universe as a whole requires an immaterial explanation. Otherwise, they maintain, the universe would have to originate from nothing, and it’s not possible that something come from nothing. (One response to the argument is that the universe may have always existed and so never came into being, but the Big Bang, well established by contemporary cosmology, is often said to exclude this possibility.)
Krauss is totally unimpressed by this line of argument, since, he says, its force depends on the meaning of “nothing” and, in the context of cosmology, this meaning depends on what sense science can make of the term. For example, one plausible scientific meaning for “nothing” is “empty space”: space with no elementary particles in it. But quantum mechanics shows that particles can emerge from empty space, and so seems to show that the universe (that is, all elementary particles and so the things they make up) could come from nothing.
But, Krauss admits, particles can emerge from empty space because empty space, despite its name, does contain virtual fields that fluctuate and can give empty space properties even in the absence of particles. These fields are governed by laws allowing for the “spontaneous” production of particles. Virtual fields, the philosopher will urge, are the “something” from which the particles come. All right, says Krauss, but there is the further possibility that the long-sought quantum theory of gravity, uniting quantum mechanics and general relativity, will allow for the spontaneous production of empty space itself, simply in virtue of the theory’s laws. Then we would have everything — space, fields and particles — coming from nothing.
But, the philosopher says, What about the laws of physics? They are something, not nothing—and where do they come from? Well, says Krauss — trying to be patient — there’s another promising theoretical approach that plausibly posits a “multiverse”: a possibly infinite collection of self-contained, non-interacting universes, each with its own laws of nature. In fact, it might well be that the multiverse contains universes with every possible set of laws. We have the laws we do simply because of the particular universe we’re in. But, of course, the philosopher can respond that the multiverse itself is governed by higher-level laws.
At every turn, the philosopher concludes, there are laws of nature, and the laws always apply to some physical “stuff” (particles, fields, whatever) that is governed by the laws. In no case, then, does something really come from nothing.
It seems to me, however, that this is a case of the philosopher’s winning the battle but losing the war. There is an absolute use of “nothing” that excludes literally everything that exists. In one sense, Krauss is just obstinately ignoring this use. But if Krauss knew more philosophy, he could readily cite many philosophers who find this absolute use — and the corresponding principle that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 unintelligible. For an excellent survey of arguments along this line, see Roy Sorensen’s Stanford Encyclopedia article, “Nothingness.”
But even if the question survives the many philosophical critiques of its intelligibility, there have been strong objections to applying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to the universe as a whole. David Hume, for example, argued that it is only from experience that we know that individual things don’t just spring into existence (there is no logical contradiction in their doing so). Since we have no experience of the universe coming into existence, we have no reason to say that if it has come to be, it must have a cause. Hume and his followers would be entirely happy with leaving the question of a cause of the universe up to empirical science.
While Krauss could appeal to philosophy to strengthen his case against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he opens himself to philosophical criticism by simply assuming that scientific experiment is, as he puts it, the “ultimate arbiter of truth” about the world. The success of science gives us every reason to continue to pursue its experimental method in search of further truths. But science itself is incapable of establishing that all truths about the world are discoverable by its methods.
Precisely because science deals with only what can be known, direct or indirectly, by sense experience, it cannot answer the question of whether there is anything — for example, consciousness, morality, beauty or God — that is not entirely knowable by sense experience. To show that there is nothing beyond sense experience, we would need philosophical arguments, not scientific experiments.
Krauss may well be right that philosophers should leave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the world to scientists. But, without philosophy, his claim can only be a matter of faith, not knowledge.
Gary Gutting is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and an editor of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He is the author of, most recently, “Thinking the Impossible: French Philosophy since 1960,” and writes regularly for The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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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9진정한 혁신-NYT120416-20.docx
2012년 2월 25일
진정한 혁신
존 거트너
“혁신은 항상 미국을 정의해온 용어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의 연두교서에서 말했다. 반대하기 힘든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혁신적인 미국 회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처럼 말이다. 그리고 불경기 앞에서도 실리콘 밸리에 있는 불굴의 기업인들은 세상을 바꿀만한 작지 않은 야심을 갖고 우후죽순으로 신생 기업을 일으켜왔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미국의 혁신 문화를 너무 크게 이상화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독창적인 디지털 기업들이 창의성을 위해 우리가 생각해봄 직한 최적의 환경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회의에 이르게 된 이유는 과거 미국의 독점 전화 회사였던 AT&T의 예전 연구 개발 기관인 벨 연구소에서의 혁신 과정을 5년 동안 보았기 때문이다.
왜 벨 연구소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벨 연구소는 우리 나라의 기술 회사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오랜 혁신적 우위가 실제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많은 교훈을 준다. 하지만 벨 연구소는 또한 오늘날 혁신에 대해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야심 찬 방법을 제시한다. 연구원들은 복잡한 국가적 통신망에 필요한 점진적 발전 방안에 대해 연구했고 그와 동시에 상상 가능한 가장 혁명적인 발명을 위해 훨씬 앞서서 생각했다.
실제로 기후 변화처럼 난해해 보이는 문제들을 처리할 혁신적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벨 연구소의 예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벨 연구소는 아폴로 프로그램을 규모나 범위, 비용 면에서 맨하탄 프로젝트와 대등하게 하려고 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목적과 엄청난 성공은 우리 모두를, 그리고 우리의 새 기계를 다 같이 연결하는 것이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향후 주주들에게 보내는 최근의 편지에서 회사의 사훈 중 하나가 “빨리 움직이고 깨트리자”라고 말했다. 벨 연구소의 사훈은 오히려 “사려 깊게 움직이고 건설하자”였을 지도 모른다. 이런 사훈은 계산자를 가지고 다녔으며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들의 옛 가치에 대한 이상한 추종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벨 연구소가 이룩한 성과를 생각해보자. 20세기라는 긴 시간 동안 벨 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과학 기구였다. 벨 연구소의 전체 발명 목록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마 1947년에 발명한 트랜지스터일 것이다. 이것은 이제 모든 디지털 제품과 동시대 삶의 기반이다. 이 작은 기기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일은 전기 신호를 증폭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전기 발화로 트랜지스터는 켜졌다 꺼졌다 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비트”라는 정보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이 정보는 숫자 1이나 0으로 표시된다. 요즘에는 우리의 전화기나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칩들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다.
벨 연구소는 다른 놀라운 발명품들도 만들어냈다. 모든 태양열원 기기의 효시인 실리콘 태양 전지가 그 곳에서 고안되었다. 벨 연구소 연구원 두 명이 레이저에 대한 최초 특허를 냈고, 동료들이 많은 초기 시제품을 만들었다. (모든 DVD 플레이어에는 벨 연구소에서 발명한 종류와 유사한 쌀 한 톨 정도 크기의 레이저가 있다.)
벨 연구소는 최초의 통신 위성을 고안 및 개발했고, 디지털 통신을 이론화하고 개발했으며, 최초의 핸드폰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하결합소자, 즉 CCD로 알려진 기기가 그 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이제 그것은 디지털 사진 기술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벨 연구소는 또한 최초의 광섬유 케이블 시스템을 구축했고 차례로 기가 바이트의 정보가 전세계를 묶을 수 있게 하는 발명을 했다. 벨 연구소는 프로그래밍 분야에도 능숙했다. 연구소의 컴퓨터 학자들은 유닉스와 C 언어를 개발했다. 이 두 가지는 오늘날 가장 필수적인 운영 체제와 컴퓨터 언어의 기초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들은 실용 기술 몇 개일 뿐이다. 벨 연구소의 어떤 연구원들은 물리학과 화학, 천문학, 수학의 경계를 엄청나게 넓혔던 논문을 집필했다. 연구소의 기타 공학자들은 모기업 벨 사의 산업체 공장을 위해 특별한 (새로운 제품이라기 보다) 새로운 과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사실, 제조업 제품의 고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요즘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통계 분석 방식인 “품질 통제”는 벨 연구소의 수학자들이 처음 적용했다.
그러면 뉴저지 소재 벨 연구소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일개 과학자와 공학자 단체가 어찌 그렇게 놀라운 신기술들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내놓았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가 지금 현재라고 부르게 된 미래를 창조했다. 게다가 그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언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가?
벨 연구소의 창의적 문화에 기여한 일등공신은 머빈 켈리였다. 아마 켈리 씨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미주리 시골 지역의 넉넉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서 시카고 대학교에서 물리학도로 교육을 받은 그는 AT&T 사의 연구소로 입사했다. 1925년과 1959년 사이에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켈리 씨는 연구원에서부터 이사회 회장까지 승진했다. 1950년에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자신의 연구소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강연했다.
켈리 씨는 기본적으로 그의 연구소와 같은 “창의적인 기술 연구소”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인 “비판적인 집단”이 생각을 바쁘게 주고 받도록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혁신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켈리 씨는 물리적인 인접성이 최선이라고 확신했다. 즉, 전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벨 연구소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이론학자들과 기술 전문가들을 한 지붕 아래 수용했다. 트랜지스터 프로젝트를 함께 연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섞인 사람들은 물리학자와 금속공학자, 전기공학자들이었다. 이론과 실험, 제조 전문가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유능한 콘서트 홀 지휘자처럼 켈리 씨는 과학적 주제들 사이, 연구자와 개발자 사이, 개인과 그룹 사이에 조화나 때로는 긴장을 유발했다.
켈리 씨의 접근법 중 한 가지는 설계였다. 그는 1941년 뉴저지 머레이 힐에 완공된 건물의 설계를 개인적으로 도왔는데 그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그 건물의 복도 중 몇 개는 아주 길어서 그 끝을 보면 소실점으로 사라질 정도로 설계되었다. 그 기나긴 복도를 수많은 지인과 문제들, 주의를 돌릴 만한 것이나 생각들과 마주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인 물리학자 한 명은 산적한 철 조각들 옆을 굴러가는 자석과 같았다.
또 다른 접근법은 성취욕이었다. 벨 연구소는 때때로 상아탑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더 적절한 묘사는 공장으로 내려가는 상아탑이다.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이나 공학자들에게 그들 기관의 궁극적 목표가 새로운 지식을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에너지 부 장관인 스티븐 추는 1980년대 초 벨 연구소에서 한 연구로 1997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벨 연구소 같은 응용 과학 환경에서 연구하면 “천재의 핵심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벨 연구소에서는 순수 과학 연구를 추구하는 연구원들에게도 자신들의 연구가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한편 켈리 씨가 추진하곤 했던 또 다른 방법은 조직화였다. 그는 벨 연구소의 위성 시설을 모 전화사의 여러 제조 공장에 설치했다. 이로써 앞서 언급한 모든 새로운 생각들을 물건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교류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공학자들도 공장 근로자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제조업은 갈수록 미국 밖으로 빠져나갔으므로 제조업과 함께 산업 지식에 대한 전체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지식이 벨 연구소가 새로운 혁신을 추진할 수 있게 하곤 했다.
켈리 씨는 특히 연구에 있어서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켈리 씨가 책임자였을 때 몇몇 과학자들은 자치권이 대단히 커서 켈리 씨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대체로 연구를 허가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의 전작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연구진을 결성했을 때, 2년 이상이 흘러서야 발명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켈리 씨가 트랜지스터의 대량 생산 문제를 처리할 또 다른 팀을 결성했을 때는 그 과제를 공학자 한 명에게 주면서 계획안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그 동안 켈리 씨 자신은 유럽에 가겠다고 했다.
요컨대 켈리 씨는 사람들이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창조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켈리 씨에게 벨 연구소는 많은 과학적인 모범, 즉 이런 선구자들이 사실상 주제에 대해 정의하는 책을 썼기 때문에 흔히 일컬어지는 “그 책을 쓴 사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구자들을 일상 속에 섞여 들어가게 할 필요도 있었다. 칸막이 사무실이 나타나기 전 시대에 벨 연구소의 전 직원은 사무실 문을 열어 놓고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던 그 연구소에서의 새로운 채용은 으레 연구 책임자가 주도했고 그 책을 쓴 사람을 찾곤 했다. 클로드 섀넌 같은 유명학 수학자나 윌리엄 쇼클리 같은 전설적인 물리학자에 대해 질문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어떤 젊은 연구원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정책은 그런 연구원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머빈 켈리 씨의 혁신 전략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가 있었는데 다른 요인들과 똑같이 중요하거나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켈리 씨는 빨리 말하고 빨리 걸었고, 계단을 뛰어 오르내렸다. 하지만 연구원들에게는 자유뿐만 아니라 시간을 주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몇 해에 해당하는 많은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오늘날 같이 더 빠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누군가는 벨 연구소가 오늘날의 기술 회사들과 달리 독점적인 지위로 보장되는 기댈 만한 큰 수익을 내는 모 회사를 위해 일하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누구도 분기 별 수익을 올리기 위해 기준치를 맞추거나 경쟁사에 앞서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은 사실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 어떤 정의에 따르면, 혁신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사회와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면서 (켈리 씨가 일전에 말했듯이) “더 좋거나 더 저렴하게, 아니면 둘 다” 기능할 수 있는 중요한 신제품이나 새로운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요즘 혁신이라는 단어를 거의 아무 데나 사용한다. 그 단어는 스마트 폰 앱이나 소셜 매체 접근 도구를 설명할 수 있다. 트랜지스터나 핸드폰 시스템을 위한 청사진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거대하다. 한 종류의 혁신은 약간의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한다. 켈리 씨와 동료들이 벨 연구소에서 반복적으로 추구했던 또 다른 종류의 혁신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와 사회의 부와 복지를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만든다.
이렇게 다른 종류의 혁신을 합쳐 말함으로써 우리는 혁신적인 소비자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의 이익 추구 기업가들이 혁신적인 선임자들만큼 효과적이라고 믿게 되는 것 같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은 지지 받지 못한다. 벨 연구소에서 레이저와 트랜지스터, 태양 전지를 발명했던 팀들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해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신제품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수익성이 큰 산업 군을 창출했다.
혁신을 위한 단일한 최고의 방법은 없다. 실리콘 밸리가 보여준 여러 가지 방법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 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거대 독점 기업들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오늘날에는 통신 산업이 번영하고 있고, 고객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다양한 저렴한 기기들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예전 전화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었어도 AT&T는 신제품과 서비스 소개가 느렸으며, 거의 저렴하지도 않았다. 그에 대해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보다 더 보수적인 회사는 거의 없지만, 더 창조적인 회사는 아예 없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유산을 생각해보면 기술적 도약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기술적 단계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것은 또한 페이스북이 명백히 실천하고 있듯이 항상 “빨리 움직이고 깨트”린다든지 (구글이 설명했던 회사 철학인) 끊임없는 “속도 예찬” 추구가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최선책도 아닐 것이다. 혁명은 빨리 일어나지만 서서히 시작된다. 우리는 반 세기도 넘는 옛 시절에 감수했던 위험과 투자했던 연구의 덕을 아직도 크게 보고 있다.
존 거트너는 출간 예정인 “생각 공장: 벨 연구소와 미국의 위대한 혁신 시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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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5, 2012
True Innovation
By JON GERTNER
“INNOVATION is what America has always been about,” President Obama remarked in his recent State of the Union address. It’s hard to disagree, isn’t it? We live in a world dominated by innovative American companies like Apple, Microsoft, Google and Facebook. And even in the face of a recession, Silicon Valley’s relentless entrepreneurs have continued to churn out start-up companies with outsize, world-changing ambitions.
But we idealize America’s present culture of innovation too much. In fact, our trailblazing digital firms may not be the hothouse environments for creativity we might think. I find myself arriving at these doubts after spending five years looking at the innovative process at Bell Labs, the onetime research and development organization of the country’s formerly monopolistic telephone company, AT&T.
Why study Bell Labs? It offers a number of lessons about how our country’s technology companies — and our country’s longstanding innovative edge — actually came about. Yet Bell Labs also presents a more encompassing and ambitious approach to innovation than what prevails today. Its staff worked on the incremental improvements necessary for a complex national communications network while simultaneously thinking far ahead, toward the most revolutionary inventions imaginable.
Indeed, in the search for innovative models to address seemingly intractable problems like climate change, we would do well to consider Bell Labs’ example — an effort that rivals the Apollo program and the Manhattan Project in size, scope and expense. Its mission, and its great triumph, was to connect all of us, and all of our new machines, together.
In his recent letter to potential shareholders of Facebook, Mark Zuckerberg noted that one of his firm’s mottoes was “move fast and break things.” Bell Labs’ might just as well have been “move deliberately and build things.” This sounds like the quaint pursuit of men who carried around slide rules and went to bed by 10 o’clock. But it was not.
Consider what Bell Labs achieved. For a long stretch of the 20th century, it was the most innovative scientific organization in the world. On any list of its inventions, the most notable is probably the transistor, invented in 1947, which is now the building block of all digital products and contemporary life. These tiny devices can accomplish a multitude of tasks. The most basic is the amplification of an electric signal. But with small bursts of electricity, transistors can be switched on and off, and effectively be made to represent a “bit” of information, which is digitally expressed as a 1 or 0. Billions of transistors now reside on the chips that power our phones and computers.
Bell Labs produced a startling array of other innovations, too. The silicon solar cell, the precursor of all solar-powered devices, was invented there. Two of its researchers were awarded the first patent for a laser, and colleagues built a host of early prototypes. (Every DVD player has a laser, about the size of a grain of rice, akin to the kind invented at Bell Labs.)
Bell Labs created and developed the first communications satellites; the theory and development of digital communications; and the first cellular telephone systems. What’s known as the charge-coupled device, or CCD, was created there and now forms the basis for digital photography.
Bell Labs also built the first fiber optic cable systems and subsequently created inventions to enable gigabytes of data to zip around the globe. It was no slouch in programming, either. Its computer scientists developed Unix and C, which form the basis for today’s most essential operating systems and computer languages.
And these are just a few of the practical technologies. Some Bell Labs researchers composed papers that significantly extended the boundaries of physics, chemistry, astronomy and mathematics. Other Bell Labs engineers focused on creating extraordinary new processes (rather than new products) for Ma Bell’s industrial plants. In fact, “quality control” — the statistical analysis now used around the world as a method to ensure high-quality manufactured products — was first applied by Bell Labs mathematicians.
So how can we explain how one relatively small group of scientists and engineers, working at Bell Labs in New Jersey over a relatively short span of time, came out with such an astonishing cluster of new technologies and ideas? They invented the future, which is what we now happen to call the present. And it was not by chance or serendipity. They knew something. But what?
At Bell Labs, the man most responsible for the culture of creativity was Mervin Kelly. Probably Mr. Kelly’s name does not ring a bell. Born in rural Missouri to a working-class family and then educated as a physicist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he went on to join the research corps at AT&T. Between 1925 and 1959, Mr. Kelly was employed at Bell Labs, rising from researcher to chairman of the board. In 1950, he traveled around Europe, delivering a presentation that explained to audiences how his laboratory worked.
His fundamental belief was that an “institute of creative technology” like his own needed a “critical mass” of talented people to foster a busy exchange of ideas. But innovation required much more than that. Mr. Kelly was convinced that physical proximity was everything; phone calls alone wouldn’t do. Quite intentionally, Bell Labs housed thinkers and doers under one roof. Purposefully mixed together on the transistor project were physicists, metallurgists and electrical engineers; side by side were specialists in theory, experimentation and manufacturing. Like an able concert hall conductor, he sought a harmony, and sometimes a tension, between scientific disciplines; between researchers and developers; and between soloists and groups.
ONE element of his approach was architectural. He personally helped design a building in Murray Hill, N.J., opened in 1941, where everyone would interact with one another. Some of the hallways in the building were designed to be so long that to look down their length was to see the end disappear at a vanishing point. Traveling the hall’s length without encountering a number of acquaintances, problems, diversions and ideas was almost impossible. A physicist on his way to lunch in the cafeteria was like a magnet rolling past iron filings.
Another element of the approach was aspirational. Bell Labs was sometimes caricatured as an ivory tower. But it is more aptly described as an ivory tower with a factory downstairs. It was clear to the researchers and engineers there that the ultimate aim of their organization was to transform new knowledge into new things.
Steven Chu, secretary of the Department of Energy, won a Nobel Prize in 1997 for his work at Bell Labs in the early 1980s. He once said that working in an environment of applied science like Bell Labs “doesn’t destroy a kernel of genius, it focuses the mind.” At Bell Labs, even for researchers in pursuit of pure scientific understanding, it was obvious that their work could be used.
Still another method Mr. Kelly used to push ahead was organizational. He set up Bell Labs’ satellite facilities in the phone company’s manufacturing plants, so as to help transfer all these new ideas into things. But the exchange was supposed to go both ways, with the engineers learning from the plant workers, too. As manufacturing has increasingly moved out of the United States in the past half century, it has likewise taken with it a whole ecosystem of industrial knowledge. But in the past, this knowledge tended to push Bell Labs toward new innovations.
Mr. Kelly believed that freedom was crucial, especially in research. Some of his scientists had so much autonomy that he was mostly unaware of their progress until years after he authorized their work. When he set up the team of researchers to work on what became the transistor, for instance, more than two years passed before the invention occurred. Afterward, when he set up another team to handle the invention’s mass manufacture, he dropped the assignment into the lap of an engineer and instructed him to come up with a plan. He told the engineer he was going to Europe in the meantime.
In sum, he trusted people to create. And he trusted them to help one another create. To him, having at Bell Labs a number of scientific exemplars — “the guy who wrote the book,” as these standouts were often called, because they had in fact written the definitive book on a subject — was necessary. But so was putting them into the everyday mix. In an era before cubicles, all employees at Bell Labs were instructed to work with their doors open.
Saddled with a difficult problem, a new hire there, an anxious nobody, was regularly directed by a supervisor toward the guy who wrote the book. Some young employees would quake when they were told to ask a question of famous mathematicians like Claude Shannon or legendary physicists like William Shockley. Still, Bell Labs’ policy was not to turn them away.
THERE was another element necessary to Mervin Kelly’s innovation strategy, an element as crucial, or more crucial even, than all the others. Mr. Kelly talked fast and walked fast; he ran up and down staircases. But he gave his researchers not only freedom but also time. Lots of time — years to pursue what they felt was essential. One might see this as impossible in today’s faster, more competitive world. Or one might contend it is irrelevant because Bell Labs (unlike today’s technology companies) had the luxury of serving a parent organization that had a large and dependable income ensured by its monopoly status. Nobody had to meet benchmarks to help with quarterly earnings; nobody had to rush a product to market before the competition did.
But what should our pursuit of innovation actually accomplish? By one definition, innovation is an important new product or process, deployed on a large scale and having a significant impact on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can do a job (as Mr. Kelly once put it) “better, or cheaper, or both.” Regrettably, we now use the term to describe almost anything. It can describe a smartphone app or a social media tool; or it can describe the transistor or the blueprint for a cellphone system. The differences are immense. One type of innovation creates a handful of jobs and modest revenues; another, the type Mr. Kelly and his colleagues at Bell Labs repeatedly sought, creates millions of jobs and a long-lasting platform for society’s wealth and well-being.
The conflation of these different kinds of innovations seems to be leading us toward a belief that small groups of profit-seeking entrepreneurs turning out innovative consumer products are as effective as our innovative forebears. History does not support this belief. The teams at Bell Labs that invented the laser, transistor and solar cell were not seeking profits. They were seeking understanding. Yet in the process they created not only new products but entirely new — and lucrative — industries.
There’s no single best way to innovate. Silicon Valley’s methods have benefited our country well over the course of several decades. And it would be absurd to return to an era of big monopolies. Today’s telecom industries are thriving, and customers likewise have access to a dazzling range of affordable devices and services, which most likely would not have been true had the old phone company remained intact. Though it had custody of the world’s most innovative labs, AT&T introduced new products and services slowly, and rarely cheaply. As Time magazine once put it, “Few companies are more conservative; none are more creative.”
But to consider the legacy of Bell Labs is to see that we should not mistake small technological steps for huge technological leaps. It also shows us that to always “move fast and break things,” as Facebook is apparently doing, or to constantly pursue “a gospel of speed” (as Google has described its philosophy) is not the only way to get where we are going. Perhaps it is not even the best way. Revolutions happen fast but dawn slowly. To a large extent, we’re still benefiting from risks that were taken, and research that was financed, more than a half century ago.
Jon Gertner is the author of the forthcoming “The Idea Factory: Bell Labs and the Great Age of American 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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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1일
최신
재무 건전성 평가, 은행들의 선전 예상
넬슨 D. 슈워츠
금융 위기에서 은행 업계의 회복을 알리는 또 다른 시금석으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연준)는 이번 주에 최신 재무 건전성 평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심사 결과는 대부분의 기관들에서 전반적으로 향상된 대차대조표를 보여줄 전망이다.
이번 평가 결과는 2월에 일자리 수가 227,000개 이상 창출되었다는 지난 주 금요일 발표된 실업률 보고서를 비롯해서 경기 회복력에 대한 여러 표시들
중 최신일 것이다.
이번 경기 회복은 금융 위기 때 혼란의
중심에 있었던 월 스트리트 기업들과 전통적인 은행을 포함하는 금융계에서 몇몇 은행들의 회복세가 약진하는 가운데 느리지만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여전히 유쾌하지 않은 의외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연준이 은행들을 대체로
건전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2009년 1차 재무 건전성 평가에서 발견된 대차대조표의 수백억 달러 차액 사태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다.
“모든 사람이 머릿기사를 피하고 싶어하죠.” 오펜하이머 사의 분석가 크리스 코토우스키 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은행에 화가 나 있어요. 은행과 감독 기관 모두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만한
일을 하고 싶어할 뿐이죠. 그게 모두가 바라는 점이니까요.”
이 평가는 단순히 머리를 쓰는 연습이 아니다. 기관들이
기준에 못 미치면 그들은 신규 자금으로 수십억 달러를 조성하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곧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준을 통과하는 기관들은 주식 배당금이 오를 것이고, 가장 튼튼한 기관들은 증권을 환수할 것이다. 1년 전 2차 평가 후 이런 상황이 일어났고, 이는 당시 은행 주식이 아직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 붕괴 전보다 훨씬 밑도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었을 때 투자자들을 기쁘게 했다.
이번 평가에서 연준 전문가들은 상위 19대
은행들의 자본 수준으로 리만 붕괴 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기 침체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 예측하려고 한다.
평가 결과, 예상되는 현상은 주식 시장의 50 퍼센트 하락, 실질 국내 총 생산의 8% 감소에 더하여 2009년 10월에
기록한 실업률 최고치인 10.2 퍼센트를 훨씬 웃도는 13 퍼센트의
실업률이다. 실업률 폭등은 주택 담보 대출과 신용 카드 빚 측면에서 은행의 손실을 증대시킬 것이다.
연준은 이 모든 점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충격이 유럽을 강타하고 미국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은행 자산이 어떻게 될 지 고려하고 있으며, 그 방법으로
그리스와 더 약소한 유럽 채권국들에서 계속되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관들에는 큰 피해가 없었던 손실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감독 기관은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금 은행들에게
너무 많은 자금 회수를 허용하면 경기 침체 시 금융 업계를 취약하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은 금융계가 다시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일련의 부정적인 결과는 시장이 막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 듯 보이는 와중에 투자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결국 감독 기관의 제약과 은행들의 요구 사이에서 타협하게
되겠죠.” 뉴욕 소재 금융 분야 전문 컨설팅 회사인 인빅터스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 카말 무스타파 씨의
말이다.
은행이 자산 건전성 평가를 통과하려면, 재정적
타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가장 엄격한 척도인 1등급 자산 비율이 연준 최악의 예상 상황에서도 5퍼센트 이상일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주식 배당금을 올리거나
증권을 환수하려면 자금이 주주들에게 돌아간 뒤 비율이 5 퍼센트 이상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19대 은행들의 1등급
자산 비율은 금융 위기의 격랑때문에 향상되어 2009년 1사분기에 5.4 퍼센트였던 비율이 2011년
3사분기에는 10.1 퍼센트로 증가했다. 실제
자금은 달러로 4,200억 달러에서 7,410억 달러로 확충되었다.
“업계는 3년
전에 비해 훨씬 견고해졌습니다.” 바클레이 사 분석가인 제이슨 골드버그 씨가 말한다. “이 점은 은행들이 대차대조표를 정리하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크게 발전했는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기 오기까지가 고통스러웠죠.” 이 같이 말하며 그는 자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십억 달러 상당의 신규 증권을 매매해야 했고, 그 결과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가 금융 위기 이전 수준보다 훨씬 낮게 유지되고 있는 아메리카
뱅크와 시티그룹 같은 기관들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여기에 왔죠.”
유럽 문제가 다소 진정된 듯 보이고, 채권
국가들은 지난 주 그리스의 부채 액면가를 부분 감액하기로 대체적으로 동의한 가운데 자산 건전성 평가의 유럽 중심 분야는 미국의 6대 금융 기관인 아메리카 뱅크와 시티그룹, 골드만 삭스, JP모간 체이스, 모건 스탠리, 웰스
파고를 특히 거래 부서에 집중해서 조사할 것이다.
지난 3월에 끝난 전 차례 자산 건전성 평가
결과와는 달리 이번 평가 결과는 목요일 즈음 발표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준이 공개할 것이다. 지난 번에는
연준이 평가 결과를 은행들에 알리고, 배당금 인상이나 증권 환수 진행 여부 발표를 그들에게 맡겼다.
연준 이사, 대니얼 K 터룰로 씨를 주축으로 한 연준 위원들은 은행 간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경 정황에 대해 더 많은 정보 공개를
강행해왔다. 이번에 연준은 급격한 경기 침체 시 잠재적인 총 수익 감소, 예상 손실, 자금 수준과 같은 수치들을 공개할 것이다. 은행들은 그 결과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에 개별적으로 받고 나서 연준의 발표 후에 배당금이나 증권 환수 등
소식을 처리할 것이다.
금융 전문가와 은행 종사자, 컨설턴트들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평가에서 어떤 은행들은 특히 성공적일 것이다.
비우호적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로 인한 수십억 달러의 여파를 여전히 처리 중인 아메리카
뱅크는 자산 건전성 평가를 통과할 듯 보이지만 주식 당 1퍼센트인 분기 별 배당금을 인상하거나 증권에
대한 신규 환수를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 금융 위기 때 붕괴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시티그룹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서서히 구조조정하고 감축함에 따라 소량의 배당금 인상만 허용될 것 같다.
모건 스탠리는 배당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투자 은행은 시티그룹에서 자사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모건 스탠리 스미스 바니 중개업체의 일부를 매입하려고 자금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골드만 삭스도 배당금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한편, JP모간 체이스와 웰스 파고 같은
더 탄탄한 은행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며, BB&T와 5th 3rd, KeyCorp, M&T 뱅크 등 몇몇 지방 은행들도
그럴 것이다. 바클레이 사의 골드버그 씨는 KeyCorp의
주식 배당금이 1.3 퍼센트에서 2.6 퍼센트로 두 배 인상될
가능성이 있는 한편, 웰스 파고 배당금은 1.5 퍼센트에서 2.2 퍼센트로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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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1, 2012
Latest Stress Tests Are Expected to
Show Progress at Most Banks
In another
milestone in the banking industry’s recovery from the financial crisis,
the Federal Reserve this week will release the results
of its latest stress tests, which are expected to show broadly improved balance
sheets at most institutions.
The findings would
be the latest of several signs of renewed strength in the economy, including
the unemployment report last Friday that showed that more than 227,000 jobs
were created in February.
For the financial
sector, including traditional banks and Wall Street firms that were at the
heart of the panic during the crisis, the recovery has been slow but steady,
with some banks recovering much faster than others.
Still, while
unpleasant surprises are possible, analysts are counting on the Fed to find
banks largely healthy. That would stand in marked contrast with the holes, in
the tens of billions of dollars, found on balance sheets in the first round of
stress tests in 2009.
“Everybody wants
to avoid headlines,” said Chris Kotowski, an analyst with Oppenheimer. “People
are angry at the banks, and both the banks and the regulators just want to do
something to show we’re working our way back towards normalcy. That’s what
everyone is craving.”
The examination is
not merely an intellectual exercise. If institutions fall short, they could be
required to raise billions in new capital, depressing their shares. If they
pass, dividend increases and stock buybacks
by the strongest institutions will follow as they did after the second round of
tests a year ago, pleasing investors whose banks’ stocks still trade at levels
far below where they where before the collapse of Lehman Brothers in September
2008.
Under the tests,
Federal Reserve specialists are trying to predict how capital levels at the 19
largest banks would withstand an economic downturn even more severe than the
one that followed the Lehman collapse.
In addition to a
50 percent stock market decline and an 8 percent contraction in real gross
domestic product, the tests envision an unemployment rate of 13 percent, well
above the 10.2 percent peak recorded in October 2009. A surge in unemployment
would increase losses for banks on mortgage and credit card debt.
If all that were
not enough, the Federal Reserve is considering what would happen to bank assets
if a market shock hit Europe and reverberated
in the United States, gauging the extent of losses that have not loomed large
for American institutions, despite the continuing problems in Greece and weaker
European borrowers.
Regulators are
walking a fine line: if they permit the banks to return too much capital now,
that might leave the industry vulnerable in the event of a downturn and lead
others to think the industry was returning to its risky ways. On the other
hand, a raft of negative results
would alarm investors just as calm seems to be returning to the markets.
“It’s going to end
up being a compromise between regulatory constraints and what the banks desire,”
said Kamal Mustafa, chairman and chief executive of Invictus, a consulting firm
in New York that focuses on the financial sector.
For banks to pass
the tests, they must show that their Tier 1 capital ratio — the strictest
measure of a bank’s ability to absorb financial blows — will be at 5 percent or
better, even in the Fed’s nightmare case. To raise dividends or buy back stock,
the ratio would have to remain above 5 percent, after capital was returned to
shareholders.
Tier 1 capital
ratios for the 19 largest banks have improved since the depths of the financial
crisis, rising to 10.1 percent in the third quarter of 2011 from 5.4 percent in
the first quarter of 2009. Actual capital in dollar terms has jumped to $741
billion from $420 billion.
“The industry is
on much firmer ground than it was three years ago,” said Jason Goldberg, an
analyst for Barclays. “This will show how much progress the banks have made in
cleaning up their balance sheets.”
“It was painful to
get here in some instances,” he said, referring to institutions like Bank
of America and Citigroup that had to sell billions of
dollars’ worth of new stock to raise capital, lowering the value of the stock
held by shareholders and leaving their shares well below precrisis levels. “But
we did get here.”
While Europe’s
problems seem to have cooled a bit, and bondholders last week largely accepted
a partial write-down on the face
value of their debt by Greece, the Europe-oriented part of the stress tests
will look at six of the largest American financial institutions — Bank of
America, Citigroup, Goldman Sachs, JPMorgan Chase, Morgan Stanley and Wells
Fargo —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ir trading desks.
Unlike the
findings of the last round of stress tests, which ended last March, the results
of this round will be made public by the Federal Reserve, with an announcement
expected by Thursday. Last time, the Fed informed the banks of their results,
and it was up to them to announce whether they would proceed with dividend
increases or buybacks.
Federal Reserve
officials, led by Daniel K. Tarullo, a Fed governor, have pushed to make more
information public about underlying conditions, despite opposition from bank
executives. In this case, the Fed will release figures like the potential drop
in revenues, expected losses, and capital levels in the event of a sharp
downturn. Banks will be informed individually of their results before the
public disclosure, and will then follow up with any news of dividends or
buybacks after the Fed announcement.
Some banks will fare better than others in the tests,
according to interviews with analysts, bankers and consultants.
Bank of America,
still coping with the effects of billions in soured subprime mortgages, is
likely to pass its test but is not seeking to raise its quarterly dividend of
0.01 a share or start new buybacks. With memories still fresh of its near
collapse in the financial crisis, Citigroup is likely to be permitted only a
small dividend increase, as it slowly streamlines and winds down unprofitable
businesses.
Morgan Stanley is
not expected to increase its dividend; the investment bank is earmarking capital to buy from Citigroup
the part of Morgan Stanley Smith Barney brokerage
that it does not own. Analysts said that Goldman Sachs also was not expected to
increase its dividend significantly.
On the other hand,
stronger banks like JPMorgan Chase and Wells Fargo are expected to score high
marks, as are some regional banks, including BB&T, Fifth Third, KeyCorp and
M&T Bank. At Barclays, Mr. Goldberg predicted the yield on KeyCorp shares
could double to 2.6 percent, from 1.3 percent, while the payout on Wells Fargo could rise to 2.2 percent from 1.5 per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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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13디지털_도난_시대의_가벼운_여행.pdf
2012년 2월 10일
디지털 도난 시대의 가벼운 여행
니콜 펄로스
샌프란시스코 ―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케네스 G. 리버설이 중국으로 여행갈 땐 첩보 영화에서 그대로 따온 듯 한 절차를 따른다.
핸드폰과 노트북은 집에 두고 나오는 대신 “임대” 장비를 가져간다. 그는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 기기의 내용을 삭제하고, 돌아오는 순간에 깨끗이 지운다. 중국에서는 블루투스와 무선 인터넷 기능을 끄고, 핸드폰은 절대로 보이지 않게 하며, 회의 때마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배터리도 분리한다. 마이크가 원격으로 켜질 수도 있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특정 코드로 이루어지고 암호로 보호되는 경로로만 연결하고, usb 하드 드라이브에서 암호를 복사해서 붙인다. 암호는 절대로 직접 치지 않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노트북에 타자 기록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데 아주 능숙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편집증 환자의 행동처럼 들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 이제는 구글이나 국무부, 인터넷 보안 대기업, 맥아피처럼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을 하는 미국 정부 기관 관료를 포함해서 연구 단체와 회사에게 표준적인 수행 절차이다.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서 디지털 첩보 활동은 정부 기밀 정보를 쫓든 기업 거래 기밀을 쫓든 간에 증가하고 있는실제적위협이다.
“만약 회사가 중국인과 러시아인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지적 재산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 기기를 가지고 그들 국가에 간다면 그 기기는 해킹 당할 것입니다.” 전직 국가 정보 지휘부의 정보 대응 담당 최고층 관료였던 조엘 F. 브레너 씨의 말이다.
거래 기밀 절취는 오랫동안 내부자들, 즉 기업 스파이나 불만에 찬 직원들의 소행이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확산, 개인 기기를 직장 네트워크에 연결해서 사유 정보를 담아가려는 직원들의 성향으로 인해 정보를 원격으로 훔쳐가기가 더 쉬워졌다. 보안 전문가에 따르면, 해커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직원들의 휴대용 기기에 침투해서 고용주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며, 이 경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기밀을 절취한다.
해킹 공격의 목표물들은 그에 관해 논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통계가 거의 없다.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침입 사건은 피해 기업들이 밝힐 경우 주가에 끼칠 영향을 두려워하거나 어떤 피해 기업들은 애초에 해킹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보고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2010년 미국 상공회의소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반증된다.
상공회의소는 그들을 비롯한 회원 기관들이 수 개월 간 사이버 절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연방 수사국으로부터 듣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 내용은 중국 소재 서버가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아시아 정책 전문가들 중 네 명에게서 정보를 훔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공회의소가 네트워크 보안을 정비했을 즈음에 해커들은 회원 기관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을 최소 6주 분량 절취한 상황이었다. 회원 중에는 미국 최대 기업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상공회의소는 사무실 프린터와 사택 중 한 집에 있던 자동 온도 조절기마저 중국 소재 인터넷 주소와 아직 통신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상공회의소는 해커들이 그들의 시스템에 침투한 방법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공격이 있었던 후 그들이 취했던 첫 번째 조치는 직원들이“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갈 때 기기 소지를 금지하는 것이었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굿 하버 컨설팅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 제이콥 올콧은 이런 조치는 중국으로 가져갔던 기기가 해킹 당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21세기에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업의 기초’이며, 최소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워싱턴 주재 중국과 러시아 대사관은 인터뷰 요청에 수 차례 불응했다. 하지만 구글이 2010년, 중국 해커들이 자사 시스템을 침입했다고 고발하자 중국 관료들은 이런 성명서를 전달했다. “중국은 우리 나라에 주재하는 외국 기업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 보호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보안 전문가들과 정부 관료들에 따르면 이런 국가들에서 통신 기기든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기업 네트워크를 침해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주 국가 정보 총괄 책임자, 제임스 R. 클래퍼 씨는 상원 정보 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과 러시아 소재 “주체들”에 의한 거래 기밀 절취에 대해 경고했다. 그리고 전직 국가 정보 총괄 책임자이자 현 민간 컨설턴트인 마이크 맥커넬 씨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와 의회, 국방부, 우주 항공국, 가치 있는 거래 기밀을 가진 기업체에서 컴퓨터 시스템 현황 결과를 보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인 최첨단 위협으로 감염되지 않은 시스템은 조사해보지 못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여행자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경우 암호화된 기기를 국내에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 국가 관료들은 미국을 방문할 때 휴대용 기기에 대한 해킹 방지를 위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이제 미국 기업들과 정부 기관 및 조직들도 소지 금지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그들과 같이 하고 있다. 하원 정보 위원회 의장인 미시건 주 공화당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위원회 위원들이 중국에 갈 때는 “비어 있는” 기기만 가져갈 수 있고 해외에 있는 동안에는 정부 네트워크 접속이 금지된다고 말했다. 그 자신의 얘기를 하자면 “전자적으로 벌거벗은 채” 여행했다고 한다.
국무부 직원들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그들의 기기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교육을 받으며 매년 일반적인 보안 원리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버설 씨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에게 조언한다. 그는 직원들이 집에 기기를 놓고 나와야 한다는 공식적인 정책은 없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를 여행하는 직원들은 그렇게 하도록 확실하게 교육시킨다”고 말했다.
보안 회사인 맥아피에서는 어떤 직원이든 중국 경계에서 기기를 조사받으면 그 기기는 절대로 맥아피 네트워크에 다시 접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원히 말이다. “우리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부회장 사이먼 헌트 씨의 말이다.
매릴랜드 주 콜럼비아에 본사가 있는 무선 보안 시스템 전문 업체 에어패트롤 사 직원들은 중국과 러시아에는 임대 기기만 가져가고 절대로 블루투스를 켜지 않으며 마이크와 카메라는 항상 꺼놓는다. “우리는 결국 위험해질 것이라 가정하고 행동합니다.” 이 회사의 기술 최고 경영자이자 오바마 대통령의 사이버 보안 위원회 위원인 탐 켈러만 씨의 말이다.
구글은 회사의 내부 출장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익명을 전제로 말한 직원들에 따르면, 구글은 중국으로 민감한 데이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대여 노트북만 가져가거나 돌아올 때 기기를 조사받도록 하고 있다.
연방 입법 위원들은 거래 기밀에 대한 사이버 도난 방지를 겨냥한 법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법이 해외 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 동안 기업들은 주로 깨닫지도 못한 채 중요한 정보를 유출시키고 있다.
“중국인들은 경로를 감추는 데 아주 능숙합니다.” 전직 정보 대응 및 컴퓨터 침입 전문 FBI 요원인 스캇 에이켄 씨가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들은 몇 년 후 외국 경쟁사가 자사 제품과 똑 같은 제품을 단지 30 퍼센트 더 저렴하게 생산하면서 출시할 때에야 복제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미 제조 기지를 잃었습니다. 이제 연구 기지를 잃고 있어요. 그것마저 잃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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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 2012
Traveling Light in a Time of Digital
Thievery
By NICOLE PERLROTH
SAN FRANCISCO — When Kenneth G. Lieberthal, a China
expert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travels to that country, he follows a
routine that seems straight from a spy film.
He leaves his cellphone and laptop at home and instead
brings “loaner” devices, which he erases before he leaves the United
States and wipes clean the minute he returns. In China, he disables Bluetooth
and Wi-Fi, never lets his phone out of his sight and, in meetings, not only
turns off his phone but also removes the battery, for fear his microphone could
be turned on remotely. He connects to the Internet only through an encrypted,
password-protected channel, and copies and pastes his password from a USB thumb
drive. He never types in a password directly, because, he said, “the Chinese
are very good at installing key-logging software on your laptop.”
What might have once sounded like the behavior of a
paranoid is now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for officials at American
government agencies, research groups and companies that do business in China
and Russia — like Google, the State Department and the Internet security giant
McAfee. Digital espionage in these countries, security experts say, is a
real and growing threat — whether in pursuit of confidential government
information or corporate trade secrets.
“If a company has significant intellectual property that
the Chinese and Russians are interested in, and you go over there with mobile
devices, your devices will get penetrated,” said Joel F. Brenner, formerly the
top counterintelligence official in the 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Theft of trade secrets was long the work of insiders —
corporate moles or disgruntled employees. But it has become easier to
steal information remotely because of the Internet, the proliferation of
smartphones and the inclination of employees to plug their personal devices
into workplace networks and cart proprietary information around.
Hackers’ preferred modus operandi, security experts say, is to break
into employees’ portable devices and leapfrog into employers’ networks —
stealing secrets while leaving nary a trace.
Targets of hack attacks are reluctant to discuss them and
statistics are scarce. Most breaches go unreported, security experts say,
because corporate victims fear what disclosure might mean for their stock
price, or because those affected never knew they were hacked in the first
place. But the scope of the problem is illustrated by an incident at the United
States Chamber of Commerce in 2010.
The chamber did not learn that it — and its member
organizations — were the victims of a cybertheft that had lasted for months
until the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told the group that servers in China
were stealing information from four of its Asia policy experts, who frequent
China. By the time the chamber secured its network, hackers had pilfered
at least six weeks worth of e-mails with its member organizations, which
include most of the nation’s largest corporations. Later still, the chamber
discovered that its office printer and even a thermostat in one of its
corporate apartments were still communicating
with an Internet address in China.
The chamber did not disclose how hackers had infiltrated
its systems, but its first step after the attack was to bar employees from
taking devices with them “to certain countries,” notably China, a spokesman
said.
The implication, said Jacob Olcott, a cybersecurity
expert at Good Harbor Consulting, was that devices brought into China were
hacked. “Everybody knows that if you are doing business in China, in the 21st
century, you don’t bring anything with you. That’s ‘Business 101’ — at least it
should be.”
Neither the Chinese nor Russian embassies in Washington
responded to several requests for comment. But after Google accused Chinese
hackers of breaking into its systems in 2010, Chinese officials gave this
statement: “China is committed to protecting the legitimate rights and
interests of foreign companies in our country.”
Still, United States security experts and government
officials say they are increasingly concerned about breaches from within these
countries into corporate networks — whether through mobile devices or other
means.
Last week, James R. Clapper,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warned in
testimony before the Senate Intelligence Committee about
theft of trade secrets by “entities” within China and Russia. And Mike
McConnell, a former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and now a private
consultant, said in an interview, “In looking at computer systems of
consequence — in government, Congress, at the Department of Defense, aerospace,
companies with valuable trade secrets — we’ve not examined one yet that has not
been infected by an advanced persistent threat.”
Both China and Russia prohibit travelers from entering
the country with encrypted devices unless they have government permission. When
officials from those countries visit the United States, they take extra
precautions to prevent the hacking of their portable devices, according to
security experts.
Now, United States companies, government agencies and
organizations are doing the same by imposing do-not-carry rules. Representative
Mike Rogers, the Michigan Republican who is chairman of the House Intelligence
Committee, said its members could bring only “clean” devices to China and were
forbidden from connecting to the government’s network while abroad. As for
himself, he said he traveled “electronically naked.”
At the State Department, employees get specific
instruction on how to secure their devices in Russia and China, and are briefed
annually on general principles of security.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Mr.
Lieberthal advises companies that do business in China. He said that there was
no formal policy mandating that employees leave their devices at home, “but
they certainly educate employees who travel to China and Russia to do so.”
McAfee, the security company, said that if any employee’s
device was inspected at the Chinese border, it could never be plugged into
McAfee’s network again. Ever. “We just wouldn’t take the risk,” said Simon
Hunt, a vice president.
At AirPatrol, a company based in Columbia, Md., that
specializes in wireless security systems, employees take only loaner devices to
China and Russia, never enable Bluetooth and always switch off the microphone
and camera. “We operate under the assumption that we will inevitably be
compromised,” said Tom Kellermann, the company’s chief technology officer and a
member of President Obama’s commission on cybersecurity.
Google said it would not comment on its internal travel
policies, but employees who spoke on condition of anonymity said the company
prohibited them from bringing sensitive data to China, required they bring only
loaner laptops or have their devices inspected upon their return.
Federal lawmakers are considering bills aimed at
thwarting cybertheft of trade secrets, although it is unclear whether this
legislation would directly address problems that arise from business trips
overseas.
In the meantime, companies are leaking critical
information, often without realizing it.
“The Chinese are very good at covering their tracks,”
said Scott Aken, a former F.B.I. agent who specialized in counterintelligence
and computer intrusion. “In most cases, companies don’t realize they’ve been
burned until years later when a foreign competitor puts out their very same
product — only they’re making it 30 percent cheaper.”
“We’ve already lost our manufacturing base,” he said.
“Now we’re losing our R.& D. base. If we lose that, what do we fall back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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