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사설
2012. 5. 6.
실행자와 이론가
제이슨 스탠리
스톤은 동시대 철학자들이 시사적인 주제나 불변하는 주제, 모두에 대해 논하기 위한 공간이다.
태그: 지식, 철학
우리 사회는 이론 지식과 실행 능력 사이에 놓인 가상의 분리 선에 기반한 계층으로 나뉜다. 대학 교수는 텔레비전에서 지루하게 떠들고, 배관 기술자는 뜬구름 잡는 상아탑 지식인들에 대해 화를 낸다. 대학 교수와 배관 기술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우리들 각자의 지성에 대한 사고 방식으로 반영된다. 인간은 이론가이자 실행자이다. 이런 활동들이 개별적인 능력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은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생각할 때는 세상의 진실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행동할 때는 다양한 행동 방식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들이 분리된 인식 능력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즉,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은 다르다. 대학 교수의 세계는 아마 배관 기술자의 세계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정신 능력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는 지식이 순수하게 이론적인, 진실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체득하지” 못한다. 배관 기술자는 정치 체계와 경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 복잡한 행동 능력은 그런 지식에 대한 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일을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친숙하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자동차 수리, 자전거 타기, 점프 슛 하기, 아기 돌보기, 리조또 요리 같은 활동을 실행 지식을 이행하는 것으로 즉각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수학 명제 증명, 물리학 가설 검증, 철학 논거 정립하기를 진리에 대한 지식 운용 능력을 이행하는 것으로 구분 지으려 한다. 이론적 사고에 능한 만큼 실용적인 일은 못하는 박식한 교수 유형은 우매한 청년 유형만큼 많이 쓰이는 대중문화 소재이다. 실행 기술은 지적 지식의 양상이 아니라는 일반적 생각은 현대 철학에서도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전례를 찾자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분법이 제시하는 모형에 따르면, 이론 지식의 이행은 연이은 지식의 행동으로 이끄는 해당 이론 가설이나 규칙과 관련된 능동적인 사고를 수반한다. 체스 선수가 체스의 첫 수(手)에 대해 배운 지시사항에 따르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조적으로 실행 지식은 심사숙고 없이 자동적으로 이행된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는 공을 받아 치기 전에, 지침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는 공을 받아 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자동적으로 실행한다. 또한 이론 지식의 이행이 가설이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행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침과 관련 있다는 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즉, 이론 지식을 이행하는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지침서를 갖고 있다. 반대로 테니스 기술을 구성하는 일부 요령은 어떤 지침서로도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응과 관련 있다. 능숙한 테니스 선수가 잘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지침서를 따르는 일과 무관해 보이는 행동인 새로운 서브에 대해 경기를 조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활동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는 적성이 진리에 대한 지식 습득에 대한 적성과 다르다는 생각은 타인과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 아이가 신체 활동에 재능을 보이면서 수학에 대한 흥미가 초반에 부족하다면, 아이가 실용적 활동에는 적성이 있으나 지적 추구에는 적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행자들과 이론가들 사이에 있음직한 구분 선을 일단 그으려고 하기 시작하면 틈이 나타난다. 운동 기술을 익히는 사람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그러나 과학 가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도 학습의 일례이다. (모두는 아니라도) 세계의 많은 언어에서 같은 동사가 이론 지식뿐 아니라 실행 지식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영어로 “know”는 불어로 “savoir”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지식에 대한 어떠한 실행에 대해 생각해보더라도, 실용적이든 이론적이든 간에 솔직히 말해서 실행 능력과 지적 능력을 둘 다 사용해야 하는 특성을 갖는 듯 보인다. 수학자의 명제에 대한 증명은 이론 지식의 실행에 대한 이상적인 예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능숙하게 계산하기 위한 수학자의 훈련은 테니스 선수의 훈련처럼 수학자가 수학적 현실을 탐험할 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하는 데 능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이행하는 일에는 능동적 사고도 필요 없다. 필자는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킨다는 지식을 일말의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이행한다. 다른 면을 보면, 단순히 실행 지식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예가 명백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습득된다. 사람들은 요리책의 조리법을 읽으면서 리조또 요리법을 배울 수 있고 종종 그렇게 하니 말이다.
아마 실행 지식을 이론 지식과 구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때는 말로 그 지식을 표현할 수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배울 때는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을 알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표현하지는 못할 수 있다. 반면 워싱턴이 미국 수도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를 구분한다고 해서 실행 지식과 이론 지식 사이에 어떤 임의적 구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필자는 암호가 415XH라는 점을 알아도 이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 있다. 단지 번호판이 주어질 때 번호 키를 누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 지식은 그러니까 필자의 손가락에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하는 점이 이론 지식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실행 방법을 알고 있는 누구든지 그 지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기를 웃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결국 “이게 아기를 웃게 하는 방법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를 웃기는 동안에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른 곳에서는 더 길게) 실행 지식과 진리에 대한 지식 사이에서 임의적인 구분을 무턱대고 지으려 한다면 실패한다는 점을 논했다. 배관 기술자나 전기 기사의 활동은 과학자나 역사가의 최신 기사들과 같은 종류의 지능에 대한 표현이다. 즉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 역학에는 능숙한 반면 철학에는 무능할 수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이론 물리학에 능하지만 철학에 무능한 사람도 있다는 점 또한 맞다. 능숙하고 능숙하지 않은 것 사이 구분은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과 관련이 없다. 학생 대출을 합리적으로 받아내기만 위해서라면 우리는 또한 많고도 아마 더 복잡한 사실을 익혀야 하는 전문적인 직업과 더 쉽게 잘할 수 있는 직업 간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병렬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실행적이거나 이론적인 성향 사이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연장선 상에 있는 구별이다.
우리 사회에는 실용적인 일과 이론적 사고 사이에 잘못된 이분법으로 세워진 장애물들이 있다. 누군가 자동차 수리에 대한 재능을 일찍 개발한다면 자신이 문학비평이나 명제 입증에는 소질이 없을 거라고 잘못 가정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로부터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문학비평이나 수학에 대해 잠재적으로 중요한 공로자를 빼앗는 셈이다. 사회의 보상 체계 또한 이론적 성격이라고 판단되는 것에 따르는 희생과 비용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앞선 상황을 가정 한다. 가상의 구분은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기능한다. 자동차 수리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을 평가할 만한 적절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토론으로부터 이질감을 느껴서 자신의 소외감이 선전 요원들의 분노에 찬 수사법으로 반영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실행자와 이론가 사이 구분은 사회를 여러 갈래로 고착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 구분은 소외시키고 분열시킨다. 그러면 그것이 단지 소설이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제이슨 스탠리는 루트거 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 권의 저서, “지식과 실행 이익”, “상황 언어”, “요령”의 저자이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글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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